
무심코라도 달을 바라본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난 추석이었는지, 아니면 더 멀어진 정월대보름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지난해 이맘 때였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어요. 아무리 되짚어 봐도, 올해는 고사하고 지난 몇 해 동안 ‘진심’으로 달을 본 적은 없었네요. 이런…그러네요, 그랬어요. 왜, 왜 어두운 밤을 비추던 그 달을 잊고 있었을까요.
고개를 들면 늘 거기에 있었던, 거기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러니 잊혔던 존재. 먹고 살기 바빠 살펴 볼 여유조차 없었다고 위안을 삼는 그런 존재. 달이었어요, 그건.
진정으로 소중한 건 잊고 살기 마련인가 봐요. 사랑이 그렇지 않습니까. 받는 게 익숙해지면 소중함을 잊는 것. 자유도 그렇고, 공기도 그렇고, 당신도 그래요.
아, 당신은 갑자기 왠 시답잖은 ‘달타령’이냐고 눈 흘기며 타박하실 지도 모르겠네요. 그리도 한가하냐며 핀잔을 주실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하지만 그렇잖아요. 이런 세상에서 뭘 한다 한들 시더운 일이 무엇이 있겠어요.
잊고 살다 보면 저 우주 속으로 멀어져간 비행사 매트처럼 그냥 떠밀려 살아갈 뿐이에요, 우리는. 그날이 그날인 쳇바퀴 다람쥐 신세. 그리도 야박하시면 정말 할 말이, 할 일이 없잖아요. 그러니 조금은 기억하자고요. 저 달을. 그래봐야 1년에 고작 한 두 번인 걸요.
그래요. 안 그래도 이래저래 고달픈 게 우리네 삶이네요.
젊은이들은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고요, 무섭게 오르는 셋방 값에 이리저리 아이들과 옮겨 다녀야 해요. 수십 년 몸담았던 일터에서 언제 쫓겨날지 몰라 주름은 날마다 늘어나고요, 기껏 밥벌이를 구해도 쥐꼬리 월급을 받으며 그 많은 ‘갑’들에게 된통 시달려야죠. 아등바등 살아도 늘 모자라는 우리들이에요.
‘헬조선’에 사는‘흙수저’라고 비아냥대도 어쩔 수 없어요. 그냥 눈물을 삼킬 수 밖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사실 그럴 여력도 없어요. 먹고 살기 바쁜걸요. 하루라도 맘 편한 날은 없지요. 그저 팔자려니, 내 탓이려니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하니 달을 볼 마음이나 있었을까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랬어야 했나 봐요. 아무리 세상 살이에 치이며 살았어도 한 두 번쯤은 자세를 가다듬고, 마음을 열고, 저 달을 봤어야 했어요. 달은 부모님처럼 늘 거기 계실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요. 하루키의 두 개의 달처럼 아예 달이 없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 미처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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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무언가를 진심으로 바라본다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그러다 보면 모든 거짓과 위선, 편견과 오해는 끼여 들 여지가 없거든요. 무엇이든 온 마음을 다해 대하는 것, 그것을 진정성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그럼으로 해서, 진정성을 갖고 바라봄으로 해서,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 가치들, 감정들을 기억한다면 꽤 근사한 일이 될 것 같아요. 그것은 누구에게는 사랑이 될 수도, 믿음이 될 수도, 자유가 될 수도, 민주주의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이제 눈 그친 오늘 밤하늘 고개를 들어 달을 보렵니다. 진심을 다해, 온 마음을 담아서. 그렇다면 내 안 밑바닥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슬그머니 올라올 것도 같아요.
당신도 저 달을 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함께 저 달을 볼 수 있을까요. 나와 당신의 달은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리 믿고 싶은 어두운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