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바람 부는 요즈음 서울 여의도 국회 주변이 부산하다. 양대 노총이 지난 12월22일부터 노동법 국회 통과 저지를 위해 천막농성에 돌입했고 집회와 총파업대회 등이 예정돼 있어 임시국회가 끝나는 새해 1월8일까지는 어수선함이 계속될 듯하다. 농성자들은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노동개혁이 노동개악이라며 전면적으로 반대한다. 항상 그랬듯이 이번 노동법 개정도 커다란 입장 차이로 그리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국회 정문 앞에는 20일 넘도록 ‘1인시위’를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바로 한국노총 김동만 위원장이다. 그의 손에는 피켓이 쥐어져 있고 그곳에는 이런 구호가 적혀 있다.
‘정부여당의 노동법 개악 시도는 노사정 합의 위반이며 반칙이고 배신입니다.’
좀 뉘앙스가 다르다. 노동개혁을 전면적으로 반대한다가 아니라 왜 반칙하고 배신하느냐의 문제다. 특히 ‘배신’이라는 말에 주목한다.
정부·여당은 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진 바로 다음날(9월16일) 기다렸다는 듯 ‘노동개혁 5대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그러나 발의된 법안은 전날의 노사정 합의내용이 아니라 애초 준비된 정부의 원안이었다. 그 순간 사회적 대타협의 정신과 노사정간 신뢰는 한순간에 날아가버렸다. 합의된 내용은 빼버리고 합의되지도 않은 내용이 버젓이 올라간다면 그 힘든 합의는 왜 필요했고 왜 그리 강조했을까. 정부와 여당은 노사정 합의라는 홍보거리와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을 한국노총이 마련해줬는데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다. 배신이란 그런 의미일 게다.
‘교훈’은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있는 것이다. 1996년 말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우리는 이미 한번의 실수를 거쳤고 그 실수가 준 교훈을 똑똑히 알고 있다. 김영삼정부는 수 년에 걸쳐 노동법 학자들로부터 노동법 개정이 절실하다는 청원을 받고도 수수방관해왔다. 그러다 1996년 4월 느닷없이 ‘신노사관계 구상’을 발표하고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를 출범해서 노동법 개정을 위한 노사공 합의안 도출에 매진했다. 노동법 개정이 시기적으로 좀 늦었지만 또 그 배경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라는 정치적 노림수가 있었다지만 그래도 시작했으니 다행이라 했다. 그런데 노개위가 6개월여에 걸쳐 도출한 성과는 정부를 거치면서 왜곡돼 발의되고 그마저도 12월26일 새벽 6시 여당인 신한국당 의원들만 모여 7분 만에 기습적으로 날치기 통과시켰으니 누더기가 돼버렸다. 그 후유증은 해방 후 처음이라는 총파업사태로 나타났고 결국 날치기 통과된 노동3법은 모두 폐기됐으며 새로 법을 제정하는 촌극으로 이어졌다. 11월 초 가입을 승인한다는 OECD의 한마디 발표에 노동법 개정은 한순간에 애꿎은 일이 되고 반칙을 동원하면서까지 서둘러 마무리됐다. 하지만 ‘동일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교훈은 남겼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쓰지 못한다. 노동개혁 5대 법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지 않으면 정말 국가경제에 대란이 일어나고 청년들이 고용절벽의 나락으로 떨어지는가? 진정 그리 생각한다면 오히려 더 차분해야 했다. 노사정 합의 후 100여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은 반칙과 배신으로부터 시작된 신뢰상실에서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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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잃은 경제발전노사정위원회의 앞날은 어떠할까. 장외에 있는 민주노총을 끌어들여도 모자랄 판에 안에 있는 한국노총마저 뛰쳐나가게 하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하나하나 매듭을 풀어가는 정성이 아쉽다. 신뢰를 보듬어가는 정치가 정말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