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도심속 외딴 풍경, 전통시장

[광화문]도심속 외딴 풍경, 전통시장

송정렬 부장
2016.01.13 06:00

이수역 14번 출구를 나와 골목길에 들어서면 색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대로변의 삭막함과 번잡함은 순간 사라지고, 살갑고 정겨운 시장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로 남성시장이다.

8년 전 결혼을 하면서 어렵게 마련한 신혼집이 남성시장 뒤편에 있는 전세 아파트였다. 있는돈 없는돈 긁어모아도 턱없이 부족한 재정상태로 인해 주말마다 발품을 팔아 겨우 찾아낸 곳이었다.

결혼 전에 품었던 넓고 화려한 러브하우스에 대한 로망은 18평 비좁은 아파트라는 냉엄한 현실 앞에 무너졌다. 곧 죽어도 ‘지하철역 도보 3분거리’의 요지에 살겠다던 자존심도 ‘언덕길을 뛰어서 3분거리(단 우샤인 볼트의 스피드로)’ 혹은 ‘마을버스 왕복’ 앞에 내려놓아야했다.

하지만 그 신혼집은 이같은 현실의 좌절감을 상쇄하고도 한참 남을 한 가지의 지정학적 장점을 갖추고 있었으니 바로 출퇴근길에 통과해야하는 전통시장의 존재였다.

낮동안 숨죽이고 있던 시장은 저녁 퇴근시간 무렵부터 서서히 살아난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더덕을 손질하는 좌판 할머니의 손이 바빠진다. 생선가게 주인아저씨는 생선상자에 얼음을 잔뜩 채워넣는다. 과일가게 젊은 총각들도 귤 등 제철 과일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한산하던 시장골목은 어느새 시끌벅적해진다. 저녁 찬거리를 위해 장바구니를 들고 나온 주부부터 다정하게 유모차를 밀며 장을 보는 젊은 부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다.

사당동의 옛 지명인 남성동에서 이름을 따온 남성시장은 도심 속에서 50년 이상 꿋꿋히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지금도 하루 1만5000명이 이곳을 이용한다. 그나마 남성시장은 뒤편에 대단지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어 아직도 어느정도 활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다수 다른 전통시장들은 사실 ‘안녕’하지 못하다.

2014년 전통시장의 매출은 20조1000억원이었다. 2001년 40조1000억원에 비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생겨나는 대형마트·기업형슈퍼마켓(SSM), 급성장중인 온라인 및 모바일 쇼핑에 손님을 빼앗기고 있어서다. 정부가 올해 3210억원을 비롯해 매년 전통시장의 시설현대화 등을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2014년 기준 전국의 전통시장수는 1389개다. 이 숫자는 중소기업청에 등록된 시장들이다. 통계의 밖에서 시장의 기능을 잃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동네의 작은 시장들도 적지 않다. 유통 대자본의 확장본능이나 전자상거래 기술발전 등을 고려하면 전통시장의 위축은 어찌보면 불가항력적이다. 하지만 쪼그라드는 전통시장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이 단지 감성적인 차원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전국 1389개 시장 속엔 20만4000개의 점포들이 빼곡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곳에서 35만3000명이 고된 땀방울을 흘리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약 140만명의 생존터전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시장들의 변화 몸부림은 처절하다. 전주남부시장은 20~30대 젊은 청년상인들이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솜씨를 녹인 제품들을 판매하는 청년몰을 만들어 젊은층을 불러들이고 있다. 대구 서문시장은 빈 점포에 지역 외식프랜차이즈업체의 본사들을 유치, 맛집순례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내수침체가 지속되면서 시장 상인들의 주름살은 더 늘었다. 설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설 차례상은 전통시장에서 준비하면 어떨까. 후한 인심과 저렴한 가격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도심 속 외딴 풍경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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