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밥상머리에서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형제가 많아 부모의 잔소리가 그치질 않는 이웃집 얘기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 었는 데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응팔(응답하라 1988)'에서도 가끔씩 이런 장면이 오버랩돼 웃곤 했다.
'가지많은 나무'가 주는 이미지는 소란하거나, 북적이는 또는 부정적인 것들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다둥이 부모들이 자식들을 보란 듯이 키워내 부러움을 사는 경우도 많다. '가지'가 많다고 꼭 시끄러운 건 아니다. 그런데도 '가지많은 나무'가 여전히 부정적 이미지로 남는 건 아마도 우리의 경험에서 오는 각인효과 때문 일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기관인 한국농어촌공사의 '비리'는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농어촌공사는 직원수만 5100여명이 넘는데다 영농시설 기반조성에서 부터 가뭄·풍·수해 방지, 고품질 농산물 생산 지원 등 업무범위도 광범위하다. 그만큼 '사각지대'가 많을 수 있다는 얘기다. 사업장이 전국 곳곳에 촘촘히 포진해 있어 임기가 짧은 사장은 사업장을 다 둘러보지도 못하고 퇴임했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린다.
'바람 잘날 없다'는 말처럼 농어촌공사의 비리는 유형만 달리했을 뿐 이번에도 재연됐다. 감사원 조사결과에 의하면, 직원 수 십여명이 일하지도 않은 일용직 인부 200여명을 마치 근무한 것처럼 꾸며 인건비 약 4억원을 빼돌렸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이런 비리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또 수탁사업 일부를 특정업체에 몰아주기 위해 사업규모를 2000만원 이하로 쪼개 수의계약으로 발주하거나,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일도 다반사였다.
농어촌공사 직원들의 비리는 이게 처음이 아니다. 지난 해 발표된 검찰(대전지검 홍성지청) 수사결과를 보면, 수리시설 개선 공사과정에 특정 펌프를 써주는 대가로 뒷돈을 챙기는 등 7개월새 벌어진 부당거래만 45억원대에 달했다. 충남 공주와 보령, 전북 군산 등 농어촌공사의 전국 현장에서 지사장만 8명이 비리를 저질렀고, 과장급 이상 17명의 간부가 연류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쯤되면 '기업형 비리'라는 말이 제격이다.
사고가 터질때 마다 농어촌공사는 '뼈를 깍는 반성'과 '대대적인 혁신'을 약속했다. 이상무 사장 스스로 "다시는 이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수없이 했다. 한동안 그의 인사말은 "이상무!" 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농어촌공사의 비리가 쉽게 근절될 거라고 보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최근 단행된 상임감사 인사를 보면 더 그렇다.
농어촌공사는 얼마전 새 상임감사에 유한식 전 세종시장을 임명했다. '세종시장으로서 탁월한 정무감각과 업무 추진력을 겸비한 적임자'라는 농어촌공사의 보도자료를 보고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유한식'이라는 이름을 쳐 넣었다. '정(政)피아' '딸 인사논란' '체육회 비리' '조치원 서북부 도시개발사업 특혜 의혹'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폭탄주 술판' 등 관련 기사가 줄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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