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정리해고·구조조정을 당한다는 것

[오동희의 思見]정리해고·구조조정을 당한다는 것

오동희 기자
2016.04.26 08:28
[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1. 지난 1월 어느 금요일 저녁.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국내 대기업 총수와 우연찮게 기업의 인적 구조조정에 대한 얘기를 했다.

기자는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 인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항해하던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최소한 구명보트나 구명조끼 정도라도 있어야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릴 것 아니냐"라고 했다.

오동희 산업1부 부장(재계팀장)
오동희 산업1부 부장(재계팀장)

기자의 얘기를 듣던 A 총수는 "저도 그게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며 "사회안전망이 확충돼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해고 이후 사회안전망이 부족하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가라앉는 배에 모두 타고 같이 침몰할 것인가. 아니면 배의 복원력과 부력을 회복하기 위해 일부는 배에서 내리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가장 큰 장벽은 우리 사회의 미비한 사회 안전망이라는 게 그 총수의 말이다.

#2. 1998년 6월 어느 목요일 오후.

한창 마감을 하는데 갑작스러운 얘기가 들려왔다. 아직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인데, 사흘 전인 지난 월요일에 회사가 없어진 걸로 하고, 퇴직 협상을 벌이자는 황당한 회사의 얘기였다.

IMF 한파가 불어닥칠 당시 그 회사의 오너는 서울 강남이나, 신촌, 영등포, 부산, 대전 등 주요 요지에 사업장을 운영하는 수천억대 부자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1997년 12월 IMF 구제금융 신청 당시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로 걱정하는 직원을 모아놓고, 구조조정이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안심시켰다.

"저는 인생 성공의 척도를 돈에 두지 않습니다. 제가 죽은 후에 저의 장례상여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따르는지가 저의 성공 척도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직원들은 그의 그런 모습에 존경심을 보였지만,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일방적인 해고통보를 받았다.

혼자만의 해고가 아닌 신문과 잡지를 폐간하고, 미디어 관련 사업을 갑작스레 정리했다. 사전 공지 없는 해고에 대한 1개월치 급여와 위로금 1개월치, 그 해 6월 월급 등 3개월치 월급을 받고 모두 순식간에 그 회사를 떠났다.

인간의 존엄성이나, 직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사라진 어려운 시기였고, 그 이후로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 때 처음 실업수당이라는 게 있고, 그 신청방법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지만, 정작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신청하지는 못했다.

#3. 2016년 4월 어느날.

해운업종과 조선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의 얘기가 다시 들린다. 전세계적인 해운 및 조선업종의 침체에 따른 불가피한 구조조정이라는 말들도 나온다.

수주가 없으니 생존할 수가 없고, 물건을 실어나를수록 운임보다 배를 빌리는 용선료가 더 비싸니 늘어나는 적자로 기업을 더 이상 끌고가기가 힘든 상황이다.

누군가는 배에서 내려야 하고, 짐을 줄여 다시 배가 움직이도록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야 일부라도 살아남을 수 있고, 다시 배가 힘을 얻었을 때 내렸던 사람들을 다시 태울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서구 선진국들과 달리 짧은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해고 이후 이들을 수용할 사회 안전망이 미비하다는 점이다.

배에서 내려 배가 복원력을 갖추고 순항할 때까지 거친 바다에서 견딜 안전 장구가 없는 게 문제이고, 또 내리는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가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러니 누구도 배에서 내리려 하지 않고, 파업 등 파국의 길을 가는 게 현재 한국 노동시장의 현실이다.

핀란드의 노키아가 어려움을 겪을 때 핀란드 정부는 브릿지 프로그램이라는 재취업 프로그램을 통해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 역할을 했다.

우리 사회도 인적 구조조정에 앞서 최소한의 구명정이나 구명조끼를 마련해주는 노력이 시급히 요구된다. 정치권이나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이후에 이해를 구하는 게 순서다. 이런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선상에서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고, 배는 더 빨리 위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오동희 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