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봄, 내 귀는 호강했다. 쿠바의 유명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재즈 기타리스트의 대가로 인정받는 래리 칼튼의 내한 공연을 차례로 봤다. 이들 모두 앙코르곡으로 아리랑을 연주하고 불렀다. 재즈풍의 기타 연주 아리랑은 또 다른 맛과 여운을 줬다. 객석도 우리 노래를 연주한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우리 가락이 이렇게도 연주될 수 있구나’.
국악과 서양악을 접목한 퓨전 음악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색다른 맛으로 수용된 지 오래다. 하지만 퓨전 이외 우리 음악 그 자체를 듣는 이들은 전공자 외에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 상황이 기특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퓨전 음악이어야만 이해하는 국악의 현실. ‘오리지널’ 국악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일까.
올 초 판소리 완창 다섯 곡을 듣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남산 국립극장에서 매월 하는 판소리 프로그램에서 ‘심청전’과 ‘흥부가’ 두 곡을 들었다.
시작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부끄러움에서였다. “문화 부장이라며 판소리 한 곡도 직접 안 들어 봤다는 거야? 에이, 좀 너무하다.” 은퇴 관료가 농담처럼 던지는 한마디는 정확한 지적이다.
문화를 의무감으로 접근하는 데 대해 기계적이라고 비웃을 사람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판소리를 직접 들어보니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내가 이토록 국악에 대해 모르는 어른으로 자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단 두 번인데, 재미를 알았다. 키득키득 웃음이 삐져나오다가 박장대소한다. 어떤 대목에선 눈물까지 났다. 아직 “잘한다” “그렇지” “얼쑤” 라는 추임새를 넣지 못했지만, 목구멍에선 이미 수없이 내지르고 있었다. 소리만이 아니라 우리 고전에 대한 재해석도 함께 배운다. 공연에 4시간 정도 소요되니 토요일 오후 나절을 다 들여야 하지만 '춘향전'까지 다섯 곡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거 같다.
실은 지난해 김해숙 국립국악원장과 만남에서 작은 충격을 받은 터다. 김 원장은 50년 가야금 외길을 걸어온 우리나라 가야금 산조의 대가다. 인터뷰 후 연주를 청했다. 손에 오래 익은 가야금을 꺼내 짧은 연주를 들려주는데 탄성이 절로 나왔다. 단 3분 정도 짧은 맛보기 연주였는데 TV(프로그램)를 통해 듣던 소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 맑은소리와 현란한 연주솜씨는 재즈 기타, 바이올린 선율에 절대 뒤지지 않는, 유명 뮤지션의 현악기 연주 그 자체였다. 양반들 앞에서 연주하는 기생문화로 접하는 TV 속 가야금이라니.
‘1인 1기’ 교육 열풍 덕에 바이올린, 플루트, 클라리넷 학원은 문전성시라고 한다. 많은 학교와 문화 재단이 학생 오케스트라 만들기에 경쟁적으로 나선다. 정부가 아예 예산을 들여 학생들에게 바이올린을 보급한다. 국악(기) 보급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정도면 국악은 철저히 배제당하고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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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조차 철저히 서양음악 중심이고, 집에서도 TV에서도 서양음악 일색이니 어린이들이 우리 음악을 알 방법이 없다. 오디션이 난무하고, 어른은 거기에 몰리는 어린이들을 ‘K-컬처’ 예비 주자라 치켜세운다. 한류의 이름으로 내다 팔기 바쁜 그것이 진짜 K일까.
청소년들이 국악을 외면하는 이유는 싫어서가 아니라 몰라서다. 그 근원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경험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다. 모르고 어색하고 어렵게 된 후의 일은 뻔하다. 영원히 잊고 버리는 일이다.
“국어도 국사도 배우는데 국악은 왜 배우지 않죠?” 김 원장의 질문은 민족주의나 애국주의에 대한 호소가 아니다. 공교육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균형에 대한, 더불어 K-컬처의 미래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