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현금 267조원 '애플' 회사채 발행하는 이유

[오동희의 思見]현금 267조원 '애플' 회사채 발행하는 이유

오동희 기자
2016.06.06 14:46
[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구성되면서 19대 국회에서 이어졌던 소위 '경제민주화 바람'이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 등 일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새로 구성되는 20대 국회에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의 사회환원 압박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오동희 산업1부 부장(재계팀장)
오동희 산업1부 부장(재계팀장)

대기업이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서 번 돈을 곳간에 쌓아두고 투자하지 않으니 이를 나눠갖자는 게 이들 주장의 핵심이다.

그렇게라도 사회 전체의 행복지수가 더 높아지고, 지속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나의 행복이 내 주변의 행복과 더불어 될 수 있다면 이같은 이상국가가 어디 있겠는가.

우선 사내유보금의 정의에 대한 갑논을박은 길게 하지 않겠다. 아무리 사내유보금이 통장에 쌓여 있는 100% 현금이 아니라고 해도 듣기 싫은 사람의 귀에는 재벌을 옹호하려는 보수언론과 재계 이익단체의 핑계로 들리기 때문이다.

간단히 얘기하면 사내유보금은 현금 뿐만 아니라 투자자산(공장부지 등 유형자산과 매출채권, 재고자산 등 현금 이외의 자산이 포함돼 있다)이 포함된 개념이다.

집중 타겟이 되고 있는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경우 사내유보금 항목 중 37~38%(2016년 1분기 기준) 만이 현금성 자산(현금과 단기에 현금화 할 수 있는 단기금융상품, 단기매도가능금융자산)이다.

사내유보금으로 기록돼는 금액이 100원이라면 37원 가량만이 현금성으로 존재한다는 얘기다. 시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사내유보금 항목의 754조원(30대그룹 269개사 보유) 중 279조원 가량이 현금성 사내유보금이다.

이를 나누자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재원을 '오늘 나눠 먹고 내일은 모르겠다'는 얘기나 다를 바 없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그 안에 있는 한알의 황금으로 하루 회식하자는 얘기다.

우리 국민 5160만여명이 미래 투자 재원 279조원을 1인당 540만원씩 나눠서 1년 동안 원없이(?) 쓰고 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미래는 버리자는 주장이다.

사내유보금의 형성이 국내 노동자의 고혈을 빨아서 이뤄졌다는 주장도 짚어보자. 산업화 초기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표기업의 성장 과정에서 정부와 국민의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사내초과유보금에 대한 과세제도가 사라진 2001년 이후 이 기업들의 생산과 이익 구조를 보면 그 이익의 기반은 국내라기보다는 해외에 더 가깝다. 이들의 매출과 이익의 80% 이상은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해외에서 생산하고 해외소비자들로부터 벌어온 이익이 대부분인데, 올 곧이 사내유보금의 소유권 전부를 국내 노동자들만의 몫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

또 사내유보금이 과도하니 이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논리도 들여다보자. 2015년 현재 삼성전자는 2001년보다 매출은 4.6배, 영업이익은 3배 가량 늘었고, 현대차는 같은 기간 매출 2.3배에 이익은 2배가 됐다. 과거에 비해 크게 성장한 만큼 미래를 위한 준비자금규모도 클 수밖에 없다.

한 드럼통의 휘발유로 '통통배'를 움직이는 것과 '항공모함'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연료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례로 2001년 4만 6570명(국내 기준)에게 1조 9500여억원이 지급되던 삼성전자의 종업원 임금은 지난해 9만 6898명에 10조원 가량으로 5배 이상이 됐다. 현대차도 같은 기간 4만8831명에 2조 1000억원에서 6만 6404명에 6조 4000억원의 임금이 지급됐다. 3배 이상이 된 것이다.

사내유보금은 이 거대한 배를 움직이거나 배의 진행이 멈췄을 때 풍파 위에서 당분간 견디기 위한 종곡(씨앗 곡식)이다. 경제전쟁을 치르는 기업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연료다.

삼성전자의 올 1분기 현금성 자산은 72조 6000억원 가량이다. 스마트폰에서 삼성과 경쟁하는 애플(2330억달러: 약 276조 6800여억원)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276조원의 현금을 가진 애플임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돈을 두고도 최근에 5조원 가량의 회사채 발행을 시도하고 있다.

일각에선 세금회피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애플은 아이폰 시리즈가 하나 실패할 경우 50조원 가량이 날아간다는 점에 대한 우려와 미래 투자를 위해 이만한 자금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삼성 경쟁사의 한 관계자는 "애플은 향후 5번 정도의 실패가 있어도 견딜 수 있게 현금을 쌓아두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사내유보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을 토대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열라는 얘기다.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의 '사내유보금환수운동의 발전 전망'이라는 기고를 보면 헬조선 흙수저의 답은 ‘죽창’이었다며 '어설픈 위로보다는 분노하라'고 얘기한다. 이는 사내유보금이라는 수단으로 노동자들의 아픔을 방패삼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선전·선동)에 나선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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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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