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일 혁명' 갤럭시노트7이 남긴 교훈

'54일 혁명' 갤럭시노트7이 남긴 교훈

성연광 기자
2016.10.15 03:00

‘알 수 없는 덪에 걸려든 황제’ 갤럭시노트7(이하 갤노트7) 단종 사태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삼성전자를 비유한 말이다. 역대 최고 기대작이란 평가 속에 세상에 나왔을 때도, ‘글로벌 유통물량 전량 교체’라는 휴대폰 역사 초유의 자발적 리콜 조치를 발표할 때 조차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올 줄은 몰랐다.

갤노트7은 출시 54일 만에 단종되는 비운의 스마트폰이 되고 말았다. 직접 손실과 판매 실기에 따른 기회 손실 규모만 7조원을 웃돈다. 삼성에게 이보다 더욱 두려운 일은 땅에 떨어진 브랜드 신뢰도다. 전세계 소비자들은 삼성전자가 새 스마트폰을 내놓을 때마다 ‘혁신’보단 ‘배터리 폭발’을 먼저 떠올릴 지 모른다. 더욱 곤혹스러운 일은 제품 단종이란 극단 조치까지 취해졌지만, 배터리 발화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품질제일주의를 표방해왔던 삼성 입장에선 그야말로 ‘덪’에 갇힌 형국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꼬였던 것일까. 전문가들은 스피드와 혁신 과잉이 불러온 참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류화 전략에 집착해 기본을 놓쳤다는 것. 라이벌 애플과 비교해 삼성의 가장 큰 강점은 하드웨어(HW) 기술력이다. 제조설비에 공정기술력까지 두루 갖춘 삼성이 HW 품질 문제로 발목을 잡혔다는 게 아이러니다.

휴대용 전원기술은 휴대폰 등 모바일기기의 핵심 경쟁력이다.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면서도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느냐가 모바일기기의 주된 선택기준이 된 지 오래다. 휴대용 배터리(리튬이온전지)는 사실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화학제품이다. 열에 취약하고 때로는 외부 충격이나 간섭에 발화될 수 있다. 보호회로 등 여러 안전 장치를 둔다 해도 방심할 수 없다. 어느 휴대폰 제조사를 막론하고 배터리 발화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 해도 갤노트7처럼 단기에 걸쳐 수십 건의 발화사례가 보고되는 일은 이례적이다. 설령 허위 신고사례가 포함돼 있다 하더라도.

세련된 디자인에 치중해 제품 두께는 더욱 얇아진 반면 배터리 용량을 키웠던 게 화근이 됐다는 분석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열이 밖으로 새나갈 수 없는 방수방진 설계에 고속충전용 단자를 채용하는 등 전원에 민감한 기능들이 무리하게 추가되면서 배터리의 물리적 임계치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있다. 발화 원인에 대한 최종 결론이 어떻든 모바일 기기의 기본인 전원공급장치(배터리)를 충분히 검증 못한 것만은 사실이다. 단종됐다고 놔둘 일도 아니다. 차기 제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선 치밀한 원인파악이 우선이다.

삼성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빠른 추격자)’를 넘어 이미 ‘퍼스트 무버(First Mover·시장 선도자)’다. 더욱이 삼성 갤럭시노트 시리즈가 창출한 패블릿(대화면 스마트폰) 분야에선 독보적인 지위에 서 있다. 4인치 화면만을 고수해왔던 애플마저 ‘아이폰 플러스’라는 타이틀로 시장 경쟁에 합류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갤노트7 개발과 위기 대응 과정에서 보여준 삼성의 모습은 ‘퍼스트 무버’ 아닌 ‘패스트 무버(Fast Mover)’였을 뿐이다. 배터리 발화 이슈 초기 내놨던 신속하고 과감한 자발적 리콜조치는 소비자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원인을 잘못 진단한 채 성급하게 불완전한 제품으로 재판매에 나섰던 건 삼성의 치명적인 실수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였지만 삼성은 값진 교훈을 얻었다. ‘퍼스트 무버’는 충실한 기본기에 나온다는 것을. 잃어버린 소비자 신뢰를 되찾기 위해선 뼈를 깎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제품 설계·제조 공정은 물론 협력사·조직인사관리·의사결정 방식까지 모든 방면에서 재점검이 필요하다. 삼성의 제품 단종 결정은 위기극복의 출발점이다. 다소 시일이 걸리겠지만 탄탄한 기본기로 재무장해 진정한 ‘퍼스트 무버’로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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