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가 필요한 레시피에 따라 부족한 식재료를 주문해주는 냉장고. 출퇴근 시간 등 주인의 생활 패턴에 맞춰 스스로 알아서 작동되는 가전제품. 운전자의 감정 상태와 분위기를 파악해 드라이빙 모드를 결정하는 자율주행차...
얼마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 2017’은 4차 산업혁명이 얼마나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는 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CES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명료하다. 4차 산업혁명은 파괴와 융합의 시대라는 것. 가전기기, 차량은 물론 집안 가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들이 속속 인터넷에 연결되고 지능화되고 있다.
스스로 배우고 진화하는 인공지능 비서는 올해 각 가정에 빠르게 보급될 전망이다. 연산처리 능력과 디스플레이 해상도가 기술 혁신을 좌우했던 스마트폰은 당장 얼마나 똑똑한 인공지능이 탑재되느냐에 따라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게 된다. 인간 전문 영역으로 간주돼왔던 언어 통번역까지 인공지능이 대체하면서 가이드 없이 자유롭게 해외 여행을 다니는 시대가 곧 열린다.
1980년대 미국 인기 드라마 ‘전격 Z작전’에 나왔던 ‘키트’(자율주행차)도 더 이상 상상 속의 미래기술이 아니다. 운전자와 대화를 나누고 운전자의 기분에 맞춰 스스로 운행하는 감성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달릴 날도 머지않았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IoT)으로 대표되는 첨단 정보통신(IT)기술이 자동차, 가전은 물론 건설 유통 등 모든 산업 영역을 파괴하고 융합시키는 블랙홀로 작용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또 개방과 협력의 시대다. 특정 산업영역에서 특정 기업이 독과점하던 시대는 끝났다. 인공지능이든 IoT든 자율주행차 기술은 시장이 아닌 생태계다. 다른 기업과 손잡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경우에 따라선 자신의 기술과 지분까지 나눠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의 합종연횡도 가속화되고 있다. BMW그룹은 올 하반기부터 자율주행차를 시범 운영한다는 목표로 인텔, 모빌아이와 손을 잡았다.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스타트업 기술펀드)에는 애플, 퀄컴에 이어 오라클까지 거대 IT기업들이 앞다퉈 투자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1000억 달러(약 120조)가 조성되는 비전펀드는 앞으로 IoT, 인공지능, 로봇 등 첨단 기술 부문에 집중투자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떨까. 정부는 2020년까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공허하고 위태롭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탄핵 정국 속에서 과연 정책 추동력이 있겠느냐는 의문 때문만은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이 주요 경제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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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은 개방과 협력에 익숙지 않은 경제 시스템이다. 우리 산업은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구조다. 배타적 중소·벤처 협력 문화가 뿌리 깊게 배어있다. 수평적 협력보다는 종속적 하청 방식에 너무 익숙하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난 중소기업일지라도 경쟁사 파트너면 애써 외면한다. 연구개발(R&D) 협력 체계도 마찬가지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유기적 협력 체계를 외쳐왔지만, 대기업과 출연연, 대학별 연구 협력은 요원하기만 하다. 기술 중심의 창업 생태계가 우리 사회에 쉽사리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마 변화의 바람은 있다. 박정호 SK텔레콤 신임 사장은 ICT 생태계 조성에 3년간 11조원을 투자한다고도 약속했다. 개방과 협력을 제시하며 “경쟁사라도 얼마든지 끌어안겠다”고도 했다. 선도하지 않으면 패자가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이 회사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선언적 메시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