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예탁결제원 사옥 앞. 강추위 속에서도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들은 지난 15일부터 이재호 예탁결제원 투자지원본부장(상무)의 출근저지 투쟁을 해오고 있다. 이 본부장은 결국 직원들과의 실랑이 끝에 이날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 본부장의 출근을 막는 것은 그를 ‘낙하산 인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는 산업은행에서 트레이딩센터장 국제금융부장 등을 지냈다. 예탁결제원 노조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 본부장의 신임을 물은 결과 515명의 노조원 중 500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연차휴가로 투표에 나서지 못한 직원을 감안하면 반대율은 사실상 100%다. 선임안이 이사회 개최 3시간 전에야 이사들에게 긴급 통보되고, 속전속결로 처리돼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킨 것이 직원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본부장의 예탁결제원 행이 결정된 것은 산은 출신의 자회사 재취업 금지 규정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산은 자회사였던대우조선해양(149,900원 ▲9,300 +6.61%)사태를 계기로 산은 퇴직자의 자회사 재취업을 강하게 규제하자 이 본부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예탁결제원에 자리잡게 됐다는 얘기다. 재취업 금지의 ‘풍선 효과’다.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재취업 금지 규정이 예탁결제원에서 풍파를 일으킨 셈이다.
한 예탁결제원 직원은 “예탁결제원과 업무상 전혀 관계가 없는 산은 인사까지 임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직원들의 자괴감이 커지고 있다”며 “이제 하다하다 산은이냐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한때 ‘신도 모르는 직장’이라 불렸던 예탁결제원은 낙하산 착륙(?)이 잦은 지역 중 하나다. 1974년 설립 이래 아직까지 예탁결제원에서 내부 승진한 사장은 한 명도 없다. 대부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금융위원회 등 관 출신이었다. 한국씨티은행 우리은행 등에서 건너온 적도 있었다.
사장 뿐만 아니라 임원 중 외부출신 비중도 다른 증권 유관기관에 비해 높은 편이다. 예탁결제원 노조는 현재 상무급 4명 중 2명이 낙하산이라고 했다. 전체 경영진으로 따지면 6명 중 4명이 낙하산으로 무려 67%에 달한다. 한국거래소, 코스콤, 한국증권금융의 경영진 중 타회사 출신 비중이 각각 13%, 17%, 33%인 것과 큰 차이가 난다.
물론 낙하산이라고 해서 무조건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예탁결제원 직원들도 낙하산 인사들을 모두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2016년12월 선임된 이병래 예탁결제원 사장은 금융위 출신이지만 합리적인 경영에 뛰어난 소통 능력까지 갖춰 직원들의 인망이 높다. 지난해 해외주식 거래 수수료 인하부터 안내 여직원 휴게실 설치 등의 성과도 그의 소통이 낳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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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로를 이해하고 접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 아닐까. 강대강 대치로 남는 것은 상처 뿐이다. 또 다시 낙하산으로 자존심을 구기지 않으려면 장기적으로는 예탁결제원의 업무를 더 전문적이고 고도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외부 기관 누구나 와도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라 내부 출신이 아니면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