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주택용 누진제 개편과 ‘꼼수’ 행정

[기자수첩]주택용 누진제 개편과 ‘꼼수’ 행정

세종=유영호 기자
2019.07.03 05:00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다시 개편됐다. 앞서 2016년 12월에 했으니 2년 7개월 만이다. 지난해 재난 수준 폭염에 늘어난 에어컨 가동시간이 요금 폭탄으로 돌아온 것이 시작이었다. 주택용에만 붙는 누진제에 대한 국민 분노가 폭발하자 한시적 완화 정책으로 급한 불을 끄더니 올해부터는 아예 상시화했다. 전기요금에 대한 국민 여론이 더 악화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한 ‘적극 행정’의 결과다.

안 그대도 더워서 짜증 나니 전기요금 스트레스라도 덜라는 ‘선의’에서 시작한 누진제 개편인데 정작 여론은 썩 반기지만은 않는 분위기다.한국전력(43,900원 ▲4,000 +10.03%)이 내민 청구서 때문이다. 7~8월 누진제 완화를 상시화하는 요금제 개편으로 한전은 매년 2874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그러자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회사에 추가 손실이 불가피해 이사진 배임 가능성이 있다”는 반발이 나왔다.

두 차례 열린 이사회에서 다섯 시간의 격론 끝에 누진제 개편안이 통과됐는데 한전 손실 보전을 위한 필수사용공제도 폐지 및 전기요금·에너지복지 분리를 담은 추가 개편안과 함께였다. 한전이 지난해 부담한 필수사용공제 할인액은 3964억원, 복지 할인액은 5540억원이다. 연간 2874억원이 드는 누진제 개편을 위해 취약계층 등에 대한 9504억원 규모 할인제도 전반을 손본다니 배 보다 배꼽이 더 큰 모양새다.

이 웃지 못할 해프닝은 ‘꼼수 행정’ 때문이다. 요금 인상 가구 없이 누진제를 개편하겠다는 억지 명분을 지키자고 전기사용량만 적으면 매달 요금 4000원을 깍아주는 제도를 덜컥 도입하더니 다시 3년도 안 돼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행정의 원칙인 예측가능성에 부합할까. 조선시대 유학자 율곡 이이가 450년 전에 경계한 ‘방기곡경(旁岐曲逕, 바른 길을 좇아 정당하게 일하지 않고 꼼수로 억지로 함)’의 행정이 지금도 계속된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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