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신약도전', 그 쓸쓸함에 대하여

[우보세]'신약도전', 그 쓸쓸함에 대하여

김지산 기자
2019.08.28 05:12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만약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반도체 사업에 실패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막대한 설비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산업 특성상 그룹이 온전히 남아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그토록 단단하던 삼성그룹이 자동차 사업 실패 뒤 겪은 후유증을 생각해보면 무리한 추론은 아니다.

흔히 성공한 비즈니스를 '기업가 정신'의 산물로 평가한다. 반대로 비즈니스가 실패하면 온갖 고초를 겪는다. 주주 반발과 신용 추락, 금융 경색, 자금 압박은 정해진 수순이다. 금융 조달이나 인허가 과정이 새삼 문제가 되며 '… 게이트'로 비화된다. 그러다 한순간 범죄자로 전락한다. 성공한 사람 편에 서기는 역사나 사업이나 다를 게 없다.

기술 반환과 임상 3상 실패로 수난을 겪은 한미약품이나 신라젠을 보면서 많은 기업인들은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대부분은 역시 '안전'을 경영의 최우선으로 꼽으며 해당 기업들의 무모함을 지적한다. 일부는 '철 없는' 것들의 세상 물정 모르는 도전이었다고 비웃기도 한다. 그러면서 지난날 복제약과 리베이트로 사업을 일구고 부를 축적하면서도 위험이 도사리는 신약 개발은 외면했던 걸 다행으로 여긴다.

반면 소수는 이들이야말로 기업가 정신의 소유자라고 칭찬한다. 이들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무게 있게 본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 같은 이는 필요 이상의 냉혹한 비판을 철저히 경계한다. 그는 신라젠 임상 3상 실패 소식을 접한 직후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임상 1상 과제들을 보면서 '절대 안된다'고 말하면 그 분의 주장이 맞을 확률은 90%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신약개발을 하지 않는다면, 신약개발을 못할 확률은 100%다."

같은 시간 다른 한편에선 무차별적 공격이 시작됐다. 일부 언론은 신라젠의 지난날을 샅샅이 훑어가며 융단 폭격을 했다. 임상이 실패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를 쏟아낸다. 한 국회의원은 '문재인 수혜주'라며 주가폭락을 '금융사기'라고 했다.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글로벌 바이오 기업 바이오젠이 알츠하이머 치료제 임상 3상 실패로 주가가 30% 가량 폭락했을 때 해외 어디서도 이런 식으로 바이오젠을 때렸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한국 같은 환경에서 큰 뜻을 품고 바이오 사업을 벌인다는 건 미친 짓일지 모른다. 이정규 대표 말마따나 '90%의 확률'에 배팅하며 신약 개발에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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