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한국서 먹튀한 중국LCD대부와의 의리

[오동희의 思見]한국서 먹튀한 중국LCD대부와의 의리

오동희 기자
2020.06.17 05:30
[편집자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삼성전자 전 LCD 부문 CEO가 이직의 이유로 '의리'를 거론하며 의리의 대상으로 지목했던 왕동셩 에스윈(시스템반도체 회사) 회장을 기자가 만난 것은 15년 전 비오이 그룹 회장 시절이다.

1989년 설립된 현대전자의 TFT LCD(초박막 액정디스플레이) 부문이 분사한 '하이디스'를 중국 BOE(京東方) 그룹이 2003년 인수하고 2년여간 운영한 시점이었다.

왕동셩 비오이 전 회장. 
사진은 15년 전 인터뷰 당시 모습이다.
왕동셩 비오이 전 회장. 사진은 15년 전 인터뷰 당시 모습이다.

2015년 10월11일 제8회 세계화상대회가 열린 서울 코엑스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다.

인터뷰 당시 왕 회장은 "한국의 하이디스 인수는 좋은 선택으로, 비오이하이디스가 한중 합작의 교두보가 될 것"이며, "제품구조 전환이 완료되면 한국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한국에 재투자해 사업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는 포부를 밝혔었다. '의리'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딱 11개월 만인 2006년 9월 왕 회장과 비오이그룹은 하이디스의 핵심자산 등을 중국 자회사에 모두 가져가고, 국내 공장은 추가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부도 처리한 후 '의리 없이(?)' 한국을 떠났다.

당시 비오이그룹은 3억 8000만달러에 하이디스를 인수하기로 했지만, 자기자금은 1억 5000만달러(당시 원달러 환율 1000원 기준 약 1500억원)만 들이고, 나머지는 국내 은행들로부터 신디케이트론 등으로 조달하는 등 비용투입을 최소화했다.

왕 회장은 최소의 비용으로 10여 년 후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LCD 사업의 문을 닫게 한 중국 내 영웅이 된 셈이다. 일부에선 그를 '중국 LCD의 대부'로 추앙하지만, 국내 LCD 업계 입장에선 국내 기술만 빼간 '먹튀'에 지나지 않는다.

왕 회장은 비오이하이디스를 부도처리하기 직전인 2006년 8월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해 채권단에서 담보로 잡고 있는 기술을 넘기라고 압박했다. 비오이하이디스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협상을 통해 하이디스가 갖고 있는 LCD 광시야각 기술(AFFS) 등 지적재산권 3200건을 넘기면 자금지원을 하겠다는 식이었다.

그 기술들은 5세대 라인을 짓던 중국 자회사인 BOE OT로 넘어가 차근차근 한국의 LCD 기술을 넘어서는 데 활용됐다. 당시 국내 연구인력 130여명을 중국으로 데리고 가 중국 시설 안정화에 투입하면서 하이디스의 국내 연구기반이 붕괴됐다.

그때 중국은 첫 대형 LCD 패널인 5세대 공장을 베이징에 지으면서 자국 내에서는 적극적 투자를 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에는 거의 투자를 하지 않아 하이디스의 생산기반도 무너졌다.

냉혹한 글로벌기업 현실에서 보면 국내에서 하이디스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그 틈을 잘 노렸던 그의 수완으로 비오이하이디스는 무너졌고, 그 이후 중국 LCD산업과 그는 승승장구했다.

왕 회장 입장에서는 자국을 위해 외국의 우수 인력과 기술을 확보하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인이나 근로자들의 입장에서는 저가에 인수한 후 핵심자산만 빼간 그를 '먹튀'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는 이후 한국에서 가져간 기술과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현실과 같이 삼성과 LG의 LCD 사업의 문을 닫게 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삼성 LCD 부문 전 CEO가 이번에 중국행을 포기한 것은 국부유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컸던 데 대한 부담 때문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의 중국행을 두고 국부유출을 지적하는 LCD 업계 지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유는 그의 말처럼 그가 알고 있는 기술들이 아주 오래전 낡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 제1기업 삼성이 어떻게 운영되고, 관리되는지, 삼성이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는 공급망관리(SCM)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등의 비엔지니어링적 노하우를 궁금해하는 중국에 이런 부분이 노출되는 것에 대해 그의 선후배들은 부담스러워 했다.

게다가 삼성의 전 CEO를 형으로 따랐던 국내 후배들이 중국의 LCD에 밀려 일자리를 잃는 동안 그는 자신을 '따거'(중국말로 큰형)로 부르는 중국 LCD 대부와의 의리를 이야기하는 데 대한 불편함이 컸다.

한국 LCD 업계 입장에서 왕 회장은 과거 의리를 저버리고 먹튀한 사람에 불과하다. LCD 업계에서 이런 그와 의리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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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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