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웃는 사진을 여기와서 (오늘) 처음 본 거 같습니다"
전자업계를 취재한 지 1년 반 정도된 후배가 최근 한 말이다. 활발한 현장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감상이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9일 차세대 반도체 R&D(연구개발)단지 기공식에 참석한 뒤 임직원들을 직접 만나 소통했다.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후 갖는 첫번째 공개 행사였다.
기공식에 앞서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행사 후에는 반도체 부문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동 과정에서 마주친 직원들은 환호하며 악수를 청했고, 이 부회장도 손을 흔들거나 환한 얼굴로 화답했다. 간담회 후에는 참석자 한 명 한 명과 기념 사진도 찍었다. 아내에게 다짐하고 왔다며 셀카 요청을 한 직원에게는 직접 영상통화를 걸어 직원의 아내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삼성 임직원들만 환호한 게 아니었다. 이날 소식을 보도한 본지 기사에는 댓글이 폭주했다. 양대 포털을 합쳐 17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보기 좋다" "기대한다"는 격려 내용이 주를 이뤘다. 다른 매체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재계의 한 지인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이 부회장이 보여준 비비드(vivid, 생생한) 모습에 대중들이 반응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이후 10여일 동안 여러 계열사의 사업장을 찾아 직원들과의 직접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방문 때마다 경영진과의 회의 뿐 아니라 임직원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하고 있다. 직원들의 환호 속에 셀카부터 영상통화, 사인까지 직원들의 요구사항에 대부분 즉석에서 응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보였던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공여 등 혐의에 대한 특검 수사가 시작된 이래 조사와 재판, 수감생활 등이 이어지면서 공개적인 경영 행보를 최소화했다. 지난해 광복절 가석방으로 경영에 복귀 했지만 5년 취업제한 규정 적용으로 여전히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간간이 보여지는 모습은 1심 재판이 진행중인 '삼성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의혹' 사건 재판장에 들어서는 무거운 표정이 주를 이뤘다.
총수의 행동 반경이 축소되다 보니 삼성 그룹 전반의 활력도 떨어졌다. 반도체가 여전히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지만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 TSMC와 격차를 좀처럼 줄이지 못하고 있다. SK하이닉스나 미국, 중국 등 다른 반도체 기업들과의 기술격차도 예전 같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TV 등 기존 사업들 외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아프다. 바이오를 키우고 있지만 삼성이라는 거인의 미래를 담기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삼성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비전제시가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다.
취업제한 부담을 털어낸 이 부회장의 복권과 이후의 적극적인 공개 행보는 변화의 기대를 품게 한다. 현재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회장이 아닌 인물은 이 부회장이 유일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998년 일찌감치 회장직에 올랐고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2018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020년 각각 회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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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은 1968년 생으로 만 54세다. 1993년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하며 판을 바꿨을 때가 51세였다. 연령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에겐 앞으로 10~15년이 경영자로서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긴 시간이 아니다. 이 기간에 대한민국 대표기업인 삼성의 미래가 좌우되고, 대한민국 경제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제 다시 뛰어야 한다. 삼성전자 부회장 직함 대신 그룹 회장직에 올라 전방위적인 경영에 나서야 한다. 조만간 공개될 삼성전자의 RE100 전략을 비롯해, 그룹 차원의 비전들도 내놔야 한다. 관리 위주로 굳어진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애플, TSMC 등 다른 글로벌 경쟁사, 한국의 다른 그룹들이 전력을 다해 달리는 사이 삼성은 뭔가 억눌린 느낌이었다. 이 부회장과 삼성의 전력 질주하는 모습을 이제 곧 볼 수 있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