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블랙홀' 된 간호법[우보세]

의료개혁 '블랙홀' 된 간호법[우보세]

안정준 기자
2023.03.02 06:00

"이제 사실상 모든 의료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거죠."

대한의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 소속 5만명(주최 측 추산)이 간호법 강행처리 규탄 총궐기대회를 연 지난달 26일, 보건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말이 나왔다.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 안건으로 직접 회부된 것에 반발한 의사단체의 불참으로 복지부와 의료계의 의료 정책 논의 창구인 의료현안협의체가 중단되면서 필수의료 개선, 의대 정원 증원, 비대면 진료 제도화 등 의료개혁과 관련된 전반적 협의가 표류중이다. 간호법이 정말로 블랙홀이 됐다.

이 법이 여·야 소속 의원 대표로 각기 3건 발의된 2021년만 해도 상황은 이렇지 않았다. 의사단체와 간호사단체가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1인 릴레이 시위를 이어간 정도였다. 해가 바뀌어 3개의 법안이 통합되고 보건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하자 의사단체와 간호조무사단체 소속 7000여명이 거리에 나섰고 간호사단체도 집회 규모를 키우며 맞불을 놨다. 다시 해가 바뀌어 이 법안이 본회의 안건으로 직행하자 이제 13개 보건의료단체와 간호사단체 간 명확한 전선이 생겼다.

2년에 걸쳐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진 것이다. 애초에 양측이 자체적으로 이견의 폭을 줄일 여지가 작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2년은 짧은 시간이었다. 우선 양측 모두 명분이 있었다. 이제 간호사 업무범위를 재정비하고 근로여건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됐다는 건 사실이다. 최근 조명된 'PA 간호사' 문제가 단적인 사례다. 간호사단체가 간호법을 통해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자는 이유다.

의사단체를 중심으로 한 반대쪽도 명분이 있다. 간호법을 의료법에서 따로 떼어내 법제화할 경우 당연히 간호조무사와 물리치료사 등 다른 직역들도 별도의 법을 만들어 달라 할 근거가 생긴다. 이 경우 의료체계 자체에 혼란이 올수 있다는게 간호법을 반대하는 쪽의 명분이다. 의료 행위 자체가 다양한 직역이 한팀으로 정해진 일들을 수행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반대쪽 의견도 타당성이 있다. 이처럼 각자의 확고한 명분 뒤에 무엇보다 각 직역의 권익과 이해가 얽혀있어 양측이 자체적으로 갈등을 조정할 여지가 적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들의 갈등을 조정해야 할 중재자에게 2년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었을 수 있다. 자체적 갈등 해소가 힘든 의료 직역과 달리 정치권과 관련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마음만 먹으면 양측의 의견을 듣고 조율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입법 자체가 각 단체들의 이해관계를 세밀히 조정하지 않은 채 강행됐다. 보건복지부 역시 법안 발의 후 각 단체들을 모아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 여야가 다음 달 9일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간호법은 이후 열리는 첫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에 부쳐진다. 야당이 강행 처리를 시도 중인 가운데 여당은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으로 통과든 거부권 행사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근본적으로 의료계 갈등 중재가 없다면 간호법은 시급한 의료개혁 현안을 더욱 깊이 빨아들일 수 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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