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아담 맥케이 감독의 '빅쇼트'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진 2007년 미국 부동산시장의 거품과 비정상적인 금융시장 상황을 생생하게 그린 영화다. 반려견 이름으로 대출을 받은 집주인과 주택 5채에 콘도까지 소유하고 있는 다주택자 댄서의 대출 스토리를 보고 있노라면 혀가 절로 끌끌 차인다. 영원할 것 같았던 집값 상승 기대와 금융회사 직원의 사기성 유혹에 이 댄서는 직업을 '치료사'로 적어 내곤 10개가 넘는 론(대출)을 빌렸다.
영화에도 언급된 이른바 '닌자(NINJA)론'의 사례인데 닌자는 'no income, no job, no asset'의 줄임말이다. 소득과 직업과 자산이 없어도 돈을 빌려주는 '묻지마 대출'을 뜻한다. 미국 주류 언론들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금융위기의 원흉으로 '닌자론' 등 약탈적 금융 행태를 지목하기도 했다.
'약탈적 대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한 경제학적 정의는 없다. '폭력을 써서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는다'는 약탈의 사전적 뜻풀이에 기초해 보면 몇 가지 요건은 찾을 수 있다. 차주가 갚을 수 있는 만큼 돈을 빌려줬는지, '갑'인 금융회사가 '을'인 차주를 속이는 기만과 사기는 없었는지, 금리나 수수료를 과도하게 물리진 않았는지 등이 판단 기준이다. 요컨대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을 부추겨 고금리로 돈을 빌리게 하고 손해를 끼치는 행위가 '약탈적 대출'이다.
발언 수위와 대상은 달랐지만 금융위기 이후 국내에서도 금융의 약탈적 행태를 문제삼은 당국자들의 경고 메시지가 끊이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금융회사를 살린 건 국민 혈세"라며 "약탈적 금융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일각에서는 '약탈적 대출'이라는 주장까지 제기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저축은행의 고금리 영업 관행이 대부업과 다를 바 없다며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최근 은행권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은 제도권 금융의 정점에 있는 은행을 직접 겨냥해 어느 때보다 임팩트가 컸다. 이 원장은 금리상승기 연간 수십조원의 합산 당기순이익을 낸 은행들의 이익 활용 방식과 경쟁 제한적 과점 영업 행태를 지적하면서 "거칠게 말하면 약탈적"이라고 했다. 전후 맥락상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표현이지만 금융산업 과점 구조 개편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식과 해결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해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은행권의 항변처럼 국내 금융시장을 닌자론이 횡행했던 과거 미국 상황과 '약탈 금융'의 프레임에서 동일시하는 건 과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담보와 상환 능력을 감안해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려주는 촘촘한 대출 심사와 규제(LTV·DSR)가 만들어진지 이미 오래다. 약탈적 대출보다는 초저금리 시기 불요불급한 영끌·빚투용 '과잉대출'을 막지 못 한 게 문제라면 문제다. 채무자(차주)도 채권자(은행)도, 감시와 경고를 소홀히 한 금융당국과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