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공사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부당하게 체포됐다 진통 끝에 풀려나면서 화기애애(?)했다던 지난달 한미 정상 회담의 잔상이 흐릿해지고 있다.
미국의 관세 부과 엄포와 정상회담 직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SNS("한국에 숙청 또는 혁명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로 초반 분위기는 살얼음판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녹여낸 것들 중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여러 '준비된' 멘트 외에 선물(거북선 모형 등), 그가 '도로 가져갈거냐'고 되물으며 눈독들인 서명용 펜이 있었다.
금속 거북선은 당시 한미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인 '조선업 협력'(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을 상징한다는게 대통령실의 설명이었다. 거북선 모형은 기계조립 명장인 HD현대중공업 오정철 기장이 손수 제작했다. 특별한 펜은 장인이 두달여에 걸쳐 원목을 직접 깎아 만든데다 서명하기 편한 심을 넣어 제작돼 굵은 글씨의 서명으로 유명한 트럼프표 법안에 생명력을 한층더 불어넣기에 적당했음직 하다. 거북선 장인이나 필기구 장인 모두 기술이 뛰어나 명장(名匠)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이번에 배터리 공장 공사 현장에서 체포되는 모습이 담긴 현지 영상 속에서 케이블타이 등으로 결박돼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우리 근로자들도 건축과 공정관리, 생산라인설계 등 자신의 분야에서 장인이거나 그에 준하는 기술인력들이다. 이 사건은 해외 취업 비자 쿼터 등 외교적인 문제에 가려져있지만 국내 기술 인력의 부실한 해외 파견 시스템과 기술자 홀대 문화라는 구조적 문제까지 드러낸 사례다.
우리처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맺고 있는 캐나다, 멕시코는 제한 없이 전문직 취업비자를 받고 있고 우리에 비해 미국 현지투자 규모에서 뒤지는 호주(1만500명) 등은 별도로 국가별 쿼터를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은 대규모 투자에도 이같은 쿼터가 없어 비자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홀대받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전문직 특별비자(E4) 연 1만5000개 발급 내용을 담은 '한국 동반자 법안'이 민간 주도로 지난 2013년부터 미국 의회에 계류되어 있지만 10년 이상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 확장을 위해 미국 현지 법인 설립에 열을 올리고 정부에서도 한미동맹을 뒷받침한다며 환영하지만, 기업은 기업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기술자 안전 대책에는 뒷짐을 진 꼴이다. 비자 발급이 녹녹치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2기 출범 이후인 올 상반기 무비자 전자여행허가(ESTA)를 받고, 미국에 갔다가 공항 등에서 입국을 거부 당한 사례는 106건에 달했다.
외교당국을 질타하기에 바쁜 여야는 이번 사태를 놓고 극명한 시각차를 보였다. 국민의힘 등 야당은 "해외 파견 기술자 보호는 정부의 기본 책무인데 방치했다"며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고, 더불어민주당은 "한미 동맹을 내세우며 온갖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도 비자 협상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전 정권 책임론을 이어갔다. 미국은 자국민 일자리 감소를 우려해 비자 확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역대 어느 정부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방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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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근로자를 태운 비행기는 돌아오지만 그토록 원하던 자국 일자리 창출과 산업 육성을 위해 긴급수혈된 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미국에도 시그널을 주고 협상에 나서 결과물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마스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조선업체를 비롯해 반도체·자동차·2차전지·철강 기업들의 미국 투자 계획에 일제히 제동이 걸릴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곳에서 사업할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SNS도 떠오른다. 이번에 부당한 처우에 시달린 기술인력들은 한국 경제의 자산이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어렵사리 풀려난 이들이 해외에서 겪은 고난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과 국가의 역량 부족이 초래한 참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