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유커의 귀환, 환대와 혐오 사이

[투데이 窓]유커의 귀환, 환대와 혐오 사이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한국영화학회장
2025.10.02 02:05
임대근(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 한국영화학회장)
임대근(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 한국영화학회장)

유커가 돌아온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무비자 입국이 시작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멈춰버린 관광산업을 되살리기 위한 조치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나라가 중국이다. 지난해에는 460만명을 넘어섰고 올해는 370만명을 기록 중이다. 유커의 귀환은 골목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거리의 공기는 사뭇 다르다.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혐중시위는 우려스럽다. 명동을 거점으로 삼던 시위대는 이제 대림동으로 몰려갔다. 이들은 "중국인은 나가라"는 과격한 구호를 외친다.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반감은 오랜 역사를 거치며 만들어졌다. 조선 후기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은 큰 상처를 남겼다. 위안스카이를 필두로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해 들어온 청군과 화교에 대한 반감도 작지 않았다. 1931년 벌어진 '만보산 사건'의 여파로 인천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화교를 폭행하고 목숨을 앗아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1992년 수교 이후 두 나라 관계가 좋을 때는 이런 감정이 감춰졌다. 중국이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리라는 인식 때문에 반감이 파고들 여지가 크지 않았다. 2016년 우리 정부의 사드배치에 중국이 '한한령'으로 맞대응하면서 양국 관계는 얼어붙었다. 반중정서는 이 틈으로 되살아났다.

2019년 홍콩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모습을 목도한 한국인은 역사적 상처의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퍼지기 시작했다는 이유로 반감이 더욱 커졌다. 한복, 김치 등을 두고 일어난 여러 문화갈등은 이런 감정을 부채질했다. 외교갈등, 역사왜곡, 미세먼지 등 중국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소재는 넘쳐난다.

유커를 향한 적대적 구호는 정부의 관광유치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국가는 환대를 선언하지만 거리에서는 혐오가 선포되는 이중적 상황은 우리 사회의 복잡한 태도를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청년세대의 반감이 중장년세대보다 더욱 크다. 청년세대는 차이나드림을 꿈꾸며 청춘을 중국에 바친 중장년세대와 다르다. 중국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이익이 없을뿐더러 역사, 문화,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마저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광은 경제적 행위면서 동시에 사회적 사건이다. 국가의 문을 열어 타자를 맞이한다는 것은 '출입국 관리'라는 정책집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혐중시위를 엄단한다는 정부의 방침은 시의적절하다. 시위가 계속되면 중국과 관계가 악화하고 관광산업이 위축될 수 있어서다. 혐오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시도도 멈춰야 한다.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혐오발언도 중단돼야 한다.

유커의 귀환은 외교적 제스처가 될 수도 있고 일상의 직접적 변화를 이끌기도 한다. 국가 차원의 환대는 언제나 조건부로 작동한다. 경제적 이익만을 전제로 외부인을 받아들이면 내부적으로는 갈등이 증폭된다. 환대는 이익을 기대하는 선에서만 유지되고 갈등과 불신이 커지면 언제든 혐오로 전환된다.

이런 역설은 정책효과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아무리 많은 유커가 들어와도 혐오가 깊어진다면 지속 가능한 교류는 불가능하다. 유커는 그저 돈만 쓰고 떠나는 이들이 아니라 문화접촉의 상대이기도 하다. 한국을 찾은 또 다른 나라의 외국인들이 이런 모습을 마주하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는 우리의 태도에 달렸다. 환대와 혐오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 경제적 이익은 반짝 효과에 그칠 수밖에 없다. 유커의 귀환은 우리가 타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풀기 위해서는 역사적 경험을 되새기고 경제적 효과를 따져보고 사회적 감정을 살펴보고 국제적 관계를 이해하는 복층의 접근이 필요하다. 혐오의 사슬을 끊지 않으면 그 대상은 중국인 유커가 아니라도 언제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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