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에는 '가장아름다운마을협회'(Les Plus Beaux Villages de France)라는 독특한 이름의 민간단체가 있다. 1982년에 설립된 협회로 전국의 작은 마을 가운데 역사와 문화, 경관 등을 심사해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브랜드를 부여한다. 현재 170여곳이 지정됐고 지정된 마을은 역사유산과 자연을 보존하면서 관광의 매력을 더해 지역경제를 되살린다.
이 협회의 사업은 단순한 관광 마케팅이 아니라 주민이 주체가 돼 마을공동체를 살리는 제도를 직접 운용하는 것이다. 인구 2000명 이하 마을, 역사적 건축이나 유산보유, 주민참여와 지방의회의 동의가 필수요건이다. 지정 후에는 품질헌장을 준수해야 하고 재심사에서 기준에 미달하면 지정이 철회된다. 운영재원은 회원마을의 회비, 지방정부 보조금, 브랜드 사용료와 출판수익 등이며 중앙정부의 정기적 예산지원은 아예 없다. 그런데도 주민과 지자체가 함께 마을의 가치를 지키면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
실제 사례를 보면 남프랑스의 라그라스는 중세 수도원과 성벽을 기반으로 예술가들이 정착해 축제와 전시가 활발한 마을로 거듭났다. 에게즈는 절벽 위 요새와 교회를 주민들이 직접 보수해 관광명소로 키워냈다. 브르타뉴 지방의 로슈포르앙테르는 주민의 손길이 꽃과 돌담에 스며들어 예술마을로 재탄생했다. 호수마을 이브와르, 알자스의 훈스파흐 등도 역사경관을 지키면서 주민의 삶과 관광을 결합한 성공사례로 꼽힌다. 아주 작은 마을이라도 주민의 참여와 역사 문화유산 보존·활용이 결합될 때 지역이 활기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한국은 심각한 지방소멸 위기를 맞았다. 이에 정부는 2022년부터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조성해 인구감소 도시를 지원했다. 행정안전부와 지방재정공제회는 인구감소지역 89곳과 관심지역 18곳 총 107개 기초자치단체에 매년 1조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하지만 많은 지자체가 문화시설 건립 등 인프라 조성에만 집중하면서 정작 주민참여 공동체 프로그램이나 지역유산 활용사업 같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는 별로 없다. 국가지원과 인프라 건설만으로는 결코 지방소멸을 막을 수 없다. 주민 스스로 마을의 가치를 지키고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지 않으면 아무리 번듯한 건물과 시설을 지어도 결국 텅 빈 공간이 되고 말 것이다. 프랑스의 경험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마을을 살리는 힘은 정부가 아닌 주민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문화경관 조성, 민박과 관광, 지역축제와 문화행사 등이 주민들의 주도와 참여로 이어질 때 마을은 살아숨쉬는 공간으로 거듭난다.
2024년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재출범하면서 조직기반과 역할이 강화됐다. 국가유산청이 나서서 세계유산 주도국인 프랑스의 앞선 사례를 벤치마크하고 문화유산 보존과 주민참여를 결합한 '가장 아름다운 한국마을' 같은 사업을 구상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령 국가유산청이 제도와 운영지원 모델을 개발하고 행안부가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연계·지원한다면 지방소멸 대응과 국가유산 보존·활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지자체와 주민이 돼야 한다. 지자체는 지역자산과 유산을 적극적으로 발굴·관리하고 주민은 지역문화와 유산을 기반으로 지역공동체를 가꾸고 되살리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 보여주듯 유산은 보존의 대상만이 아니며 주민 삶과 문화가 이뤄지는 실제 터전이다. 유산을 지키는 일은 공동체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설 몇 개 더 건립하는 게 아니라 주민과 공동체가 살아숨쉬는 마을을 만드는 과정이다. 지방소멸과 인구감소 위기를 넘어설 힘은 결국 사람에게 있고 주민참여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