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인공지능)의 발전속도가 눈부시다. 이제 AI는 산업은 물론 과학연구의 방향과 효율성을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았다. AI 인프라와 활용능력이 국가 경쟁력으로 평가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정부가 '제네시스미션'(Genesis Mission)을 발표했다. AI와 국가 과학데이터를 활용해 과학적 발견과 기술혁신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겠다는 국가전략 선언으로 이는 과거 맨해튼 프로젝트나 아폴로 프로젝트에 비견될 만하다. 과학기술 패권경쟁이 새롭게 막을 올린 것이다.
이와 맞물려 주목받는 국제 협력체가 '트릴리언 파라미터 컨소시엄'(TPC)이다. TPC는 초거대 AI모델, 즉 조단위 파라미터를 갖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공동개발하기 위해 미국, 유럽, 아시아의 연구기관, 슈퍼컴퓨팅센터, 대학, 산업계가 참여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다. 단순히 모델을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데이터·컴퓨팅·인재를 결합한 새로운 과학연구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이 컨소시엄의 목표다. 이처럼 과학연구의 패러다임은 AI 개발과 맞물려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데이터 분석과 AI는 한 세대 만에 이론과 실험, 시뮬레이션이란 전통적 세 축에 더해 새로운 연구방법으로 자리잡았다. AI로 신약후보물질이나 새로운 배터리물질을 탐색하고 기후변화를 예측하며 수학적 난제를 해결했다는 기사가 연일 매스컴에 등장한다. AI는 단순한 계산도구가 아니라 지식을 생성하고 가설을 제안하고 이를 검증하는 연구 동반자의 자리에 올랐다. 연구 생산성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하는 동시에 과학경쟁의 속도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문제는 이 경쟁이 기관이나 기업간 기술경쟁을 뛰어넘어 국가간 전략경쟁이 됐다는데 있다. 한국을 포함한 모든 선진국은 슈퍼컴퓨터와 AI모델을 결합한 'AI 과학 인프라'를 국가 차원에서 구축 중이다. 데이터와 컴퓨팅이 결합된 거대 AI 플랫폼을 통해 과학기술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제네시스미션과 TPC는 이러한 전략의 두 축, 즉 국가 주도 프로젝트와 국제협력 네트워크라는 2가지 접근을 보여준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1월 말 '한국형 제네시스'라 할 수 있는 '과학기술×AI 국가전략(안)'을 발표했다. 이 전략은 바이오, 지구과학, 수학, 재료·화학,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6대 과학기술분야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가설생성부터 결과분석까지 수행하는 AI 연구동료 시스템, 자동화된 자율실험실 구축을 통해 초격차 성과창출을 목표로 한다. 과학용 AI는 단순히 모델 크기를 키운다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효율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선 데이터의 특성,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실험데이터, 각 도메인 지식이 통합돼야 한다. 그리고 이는 고성능의 슈퍼컴퓨팅 환경과 긴밀히 결합돼야 한다. 국가 차원의 투자와 국제협력이 필수인 것은 이 때문이다.
제네시스미션은 데이터의 통합과 표준화를 강조한다. 최근 개최된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의 주제발표('제네시스 임무: AI시대, 과학 혁신의 새로운 여명')에서 이경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도 산재한 실제 데이터를 AI 학습용으로 통합하고 가치화하는 작업이 가장 먼저 수행해야 할 과제임을 명확히 했다. 연구데이터를 안전하게 축적하고 공유·활용해 새로운 가치창출을 목적으로 한 연구데이터법 역시 조속히 제정될 필요가 있다.
이제 AI는 첨단 과학기술 수준을 뛰어넘었다. AI는 국가 과학역량을 증폭하는 성장엔진이며 국가경쟁력과 안보를 좌우하는 전략자산이다. 이경수 부의장이 지적한 것처럼 세계적 수준의 제조 공급망과 우리만 보유한 고품질 도메인 데이터를 활용한다면 우리도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산학연 연구자들은 정부 정책방향에 발맞춰 AI를 연구동료로 적극 활용하자. AI를 활용한 연구는 산업적 파급효과가 명확한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