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주권 향한 마지막 퍼즐[청계광장/황호원]

기술 주권 향한 마지막 퍼즐[청계광장/황호원]

황호원 항공안전기술원장/법학박사
2026.05.26 02:00

한국, 독자 항공기엔진 개발 추진하지만
인증 소홀하면 사업 지연,추가비용 발생
설계 초기부터 철저한 인증절차 거쳐야

황호원 항공안전기술원장
황호원 항공안전기술원장

학생에게 시험은 어떤 의미인가? 시험이란 학업 과정에서 배운 지식과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자격과 신뢰를 인정받는 핵심 절차라 할 수 있다. 이는 의사가 국가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환자를 진료할 수 있고, 건축물도 준공검사를 통과하여야 사용할 수 있으며, 신약 개발도 임상실험 등의 절차를 통하여 검증되어야 복용이 허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 공학의 집약체인 항공우주 산업에서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안전하게 하늘을 날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절차가 있다. 바로 '인증(Certification)'이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항공 분야에서 인증은 단순히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상용화를 위한 최소한의 법적·기술적 관문이다.

그동안 우리 국가 R&D는 이른바 '추격형 모델'에 익숙했다.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빠른 시간에 시제품을 만들어내고 성능을 입증하는 데 급급했다. 이 과정에서 인증은 늘 뒷전이었다. 연구 현장에서는 "일단 뭔가를 만들고 나서 인증을 고민하자"는 목소리가 컸고, 정부의 투자 역시 가시적인 시제품 개발중심의 연구 성과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항공 엔진과 같은 첨단 분야의 개발은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한 국가의 소재·부품·장비 역량이 집약된 '기계공학의 꽃'이요 자존심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항공 엔진 조립 및 정비(MRO) 능력을 갖춘 국가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면허 생산과 부품 국산화를 넘어 세계적 수준의 독자적인 첨단 엔진 개발을 추진하는 등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선도자(First Mover)로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증은 우리나라 항공 산업이 글로벌 공급망의 하부 구조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의 규칙을 주도하는 '게임 체인저'로 거듭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다.

그러기에 지금이야말로 인증을 소홀히 한 채 진행되는 기존의 국가 R&D 발주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할 때이다. 인증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된 기술은 상용화 직전 단계에서 인증의 벽에 부딪혀 사업의 장기화와 엄청난 규모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항공 선진국들은 이미 연구개발과 인증을 별개로 보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제품화 과정'으로 관리하여 설계 이전 단계부터 감항 당국과 긴밀히 협력하며 인증계획을 수립한다. 반면 우리는 그동안 개발에만 치중하여 상용화 단계에서 예산과 시간을 허비하는 구조적 한계를 보였다. 항공기 기체나 부품은 설계 초기 단계부터 항공기 기술기준(Airworthiness Standards)을 충족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연구자가 감항 당국은 물론 항공 인증 전문검사기관인 항공안전기술원(KIAST)과의 지속적이며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항공 엔진 국산화가 완성되면 독자적으로 '수출 자립성'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어 타국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는 명실상부한 세계 항공 시장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이제 '개발을 위한 개발'의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욱이 향후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모든 항공 R&D는 인증의 잣대를 엄격히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항공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나아가 소중한 국가 재정 낭비를 막는 길이다. "인증될 수 없는 기술은 국가가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확립될 때, 비로소 우리 항공 R&D가 '연구실의 성과'를 넘어 '글로벌 시장의 제품'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시험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듯, 우리 항공 기술도 인증이라는 혹독하지만 가치 있는 시험을 통과할 때 비로소 '기술 주권'을 온전히 확보한 국가로 도약할 것이다. 문장의 끝에 마침표를 찍어야 비로소 완성되듯, 항공 엔진 개발사업의 마침표는 인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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