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때문에…'출판 헤게모니' 대이동 시작

아이패드 때문에…'출판 헤게모니' 대이동 시작

최중혁 기자
2010.02.12 08:34

美 전자책 가격결정권 '유통서 출판으로'

출판업계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교보문고, 인터파크, 예스24 등 대형 유통업체에 실려 있던 시장지배력이 출판사 등 콘텐츠업체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는 것.

이번에도 변화의 진원지는 미국의 '애플'이다. 애플이 지난달 28일 태블릿PC '아이패드(iPad)'를 선보이자 세계 1위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은 맥밀란 출판사의 컨텐츠 가격인상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아마존은 맥밀란의 가격인상 요구에 '서적 판매 중단'이라는 초강수로 맞서다 아이패드 출시 나흘만에 백기를 들었다. 일명 '아마존의 굴욕' 사건이다.

아마존이 백기를 든 것은 애플의 등장으로 더 이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기 어렵게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애플은 아이패드를 내놓으면서 전자책 권당 판매가격을 아마존보다 3~5달러 높은 12.99~14.99달러로 제안했고, '아이북 스토어'를 통한 새로운 유통 방식도 제시했다. 아마존은 그 동안 유통망 장악을 등에 업고 '유통7, 출판3'의 가격결정권을 행사해 왔지만 애플이 '출판7, 유통3'의 새로운 이익구조를 제시하면서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국내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한국출판콘텐츠(KPC, www.e-kpc.co.kr)는 다음달부터 대형 유통업체들과 콘텐츠 거래를 본격 개시할 예정이다. KPC는 협상력이 약한 중·소형 출판사들이 디지털콘텐츠 권익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만든 연합체 회사다. 대표이사는 더난출판사의 신경렬 대표가 맡고 있고, 김영사, 다산북스, 문학과지성사, 시공사, 해냄 등 뜻을 같이하는 출판사 60여 곳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KPC는 앞으로 전자책, 오디오북, e러닝, POD(온라인고객주문제작서비스), 포털검색 등 크게 5개 분야에서 개별 출판사와 유통업체간 디지털콘텐츠 거래 중개, 유통질서 감시 등의 역할을 수행할 계획이다. 종이책 시장은 대형 유통업체에 주도권을 빼앗겼지만 디지털콘텐츠 시장만큼은 유통사에 휘둘리지 않고 이익구조를 유리하게 가져가겠다는 각오다.

KPC 관계자는 "회사가 자리를 잡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3월부터 콘텐츠 거래가 시작되면 KPC의 존재를 적극 알릴 계획"이라며 "그 동안 유통사들이 출판시장을 좌지우지했지만 디지털 시장에서는 일방적으로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웅진씽크빅(1,185원 ▼2 -0.17%), 민음사 등 매출액이 많은 대형 출판사는 중·소형 출판사보다 상황이 더 여유롭다. 웅진씽크빅은 지난해 단행본 매출이 592억원으로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다. 민음사도 매출 400억원의 콘텐츠 강자다. 이들은 유통사가 간절히 원하는 '전자책 콘텐츠 사용 독점권'을 내주지 않고 있다. 애플의 가격정책 발표 이후 아쉬운 쪽은 유통사가 됐기 때문이다.

웅진씽크빅 관계자는 "아이폰, 아이패드 출시 이후 출판시장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최근 전략기획팀을 중심으로 콘텐츠의 디지털화 등 관련 대응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콘텐츠 업체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유통사들이 손을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예스24(3,540원 ▲10 +0.28%), 알라딘,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리브로 등의 온·오프라인 서점들은 지난해 9월 전자책 사업을 추진할 공동출자법인인 한국e퍼브를 출범시켰다. 참여 유통사들은 몇몇 출판사와 함께 콘텐츠 확보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다. 교보문고는삼성전자(183,500원 ▼4,400 -2.34%)와 손잡고 신형 전자책 단말기를 내놓으며 독자적인 시장확대를 꾀하고 있고, 음원시장을 통째 삼킨SKT(75,000원 ▼1,200 -1.57%),KT(59,600원 ▼1,900 -3.09%)등 이동통신사들도 전자책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유통사들의 적극적인 대응에도 불구하고 대세는 콘텐츠업체 쪽으로 기울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종대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이폰, 아이패드 출시로 이니셔티브는 유통에서 출판쪽으로 이미 넘어왔다"며 "유통업체들은 종이책 시장이나 음원시장에서처럼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싶겠지만 앞으로는 유통 마진만 조금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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