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아톤' 초원이같던 여고생, 李선생님 만나 달라졌다

'말아톤' 초원이같던 여고생, 李선생님 만나 달라졌다

최민지 기자
2015.05.18 05:30

[인터뷰]이재민 대구 정화여고 교사"권위를 내려놓을 때 '진짜 교권' 선다"

/사진제공=이재민 교사
/사진제공=이재민 교사

"은지(가명)는 교탁에서 봤을 때 왼쪽에서 두 번째 분단 맨 끝 자리를 좋아해요. 숫자를 잘 외워서 전화번호 등을 금방 암기하고요. 다큐멘터리 보는 걸 즐긴답니다."

'스승의 날'을 계기로 교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이재민 대구 정화여고 교사(사진·33)는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교사 스스로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말하는 듯하다.

이재민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2학년 학급의 김은지 양은 경계선급자폐성장애를 앓고 있다. 경계선급자폐성장애는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윤초원 군(조승우 역)과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

이 교사는 "은지를 편견없이 대하기 위해 한 달 간 교육청의 특수교육 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학부모와 자주 은지에 대해 논의하는 등 먼저 다가가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장애 학생을 맡은 건 올해가 처음이라 걱정이 앞섰습니다. 조용한 수업시간에 혼잣말을 하는 등 아이의 돌발행동을 볼 때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 같았죠. 그럴 적마다 어머니께 문의하며 해결책을 찾았어요. 자리 배치, 동아리 가입 등 일반인이 밟는 모든 절차를 은지가 불편 없이 해낼 수 있도록 일주일에 두어번 씩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 교사의 노력으로 은지 양은 학교생활을 시작한 지 10여년 만에 웃음을 되찾았다. 은지 양의 어머니 조모씨는 "딸이 거쳐간 담임 교사 중에는 배려한답시고 거의 모든 교내 행사에서 아이를 열외시키거나, 대놓고 촌지를 요구하는 등 상처를 주는 분들이 많았다"며 "딸이 학교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은 담임선생님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교사가 인권친화적인 교실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모든 학생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교사는 제자가 된 학생들의 이름은 빠짐없이 외운다. 특히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들은 수업시간 틈틈이 이름을 부르며 참여를 유도했다. 은지 양 역시 이 교사의 방침에 따라 모든 단체행동에 함께 할 수 있었다.

"'장애인을 돕는다'는 말에는 일반인이 장애인을 위해 참고 희생해야 한다는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은지를 도와줘라'는 말 대신 '은지와 함께 하라'고 권유합니다. 덕분에 은지가 가진 장애를 하나의 특징으로 보는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이 교사는 학생을 지도할 때 인성 부분을 가장 강조한다. 그는 매 학년 첫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여러분이 교사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 나도 삼촌같은 선생님이 되어주겠다'는 얘기를 꼭 한다. 이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이 수직적인 관계에 머물면 '수박겉핥기 식'의 소통밖에 이뤄지지 않는다"며 "교사가 권위를 내려놓아야 존경받을 수 있다는 점이 교권의 역설적인 측면"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사는 스승의 날에 이어 지난 16일 결혼식을 올리면서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 제자들이 준비한 축가를 들으며 인생의 반려자를 맞은 것. 그는 "학생이 열이면 고민도 열 가지"라며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도록, 학생의 목소리에 늘 귀 기울이는 교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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