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역사 보존과 개발 갈등, 규제보다 기준이 먼저다

[기고]역사 보존과 개발 갈등, 규제보다 기준이 먼저다

이명범 건설주택정책연구원 원장
2026.03.20 05:30
(서울=뉴스1) = 오세훈 서울시장이 18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33회 정례회 시정질문에서 김규남 국민의힘 시의원의 서울 종로구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 논란 질의에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그렇게 압도적으로 눈 가리고 숨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를 정도의 압도적 경관은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이날 오 시장이 공개한 종묘 정전 상월대에서 세운지구를 바라본 재개발 시뮬레이션 3D 이미지. (서울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1.18/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서울=뉴스1) = 오세훈 서울시장이 18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33회 정례회 시정질문에서 김규남 국민의힘 시의원의 서울 종로구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 논란 질의에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그렇게 압도적으로 눈 가리고 숨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를 정도의 압도적 경관은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이날 오 시장이 공개한 종묘 정전 상월대에서 세운지구를 바라본 재개발 시뮬레이션 3D 이미지. (서울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1.18/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도시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숨 쉬는 공간이다. 역사 보존과 개발이 충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어느 한쪽의 선택으로만 접근하는 순간 갈등은 되풀이된다. 세계 주요 도시들은 이미 이를 '보존 대 개발'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공존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하며 해법을 모색해 왔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대표적 사례다. 유리 피라미드 건설 당시 거센 반대가 있었지만, 공론화와 설계 경쟁을 통해 역사성과 현대성이 결합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영국 런던의 코벤트 가든은 철거 대신 보존을 택해 상업성과 문화적 가치를 동시에 확보했고,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는 폐철도를 공원으로 재생해 도시 경쟁력을 높였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이해관계자 참여, 보존의 자산화, 그리고 무엇보다 예측 가능한 기준이다. 개발 가능 범위와 규제가 명확했기에 갈등은 관리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도시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최근 논란이 되는 세계유산법 시행령 개정안은 이런 흐름과 거리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규제의 불확실성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도시계획 수립 단계에서 이미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마쳤더라도, 건축허가 단계에서 다시 평가받아야 할 수 있다. 하나의 사업에 두 번의 평가가 요구되는 구조는 사실상 이중 규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더 우려되는 대목은 세계유산지구 밖의 사업까지도 국가유산청장의 판단에 따라 영향평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거리나 높이 등 객관적 기준 없이 '영향 우려'라는 추상적 판단에 기대게 되면, 서울 전역이 잠재적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개발 사업을 계획과 예측의 영역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다.

경과규정 없이 즉시 시행된다는 점도 문제다. 이미 인허가를 마치고 추진 중인 사업까지 영향을 받게 되면, 사업 지연과 비용 증가가 불가피하고 그 부담은 결국 주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한 규제 강화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는 사안이다.

물론 보존의 필요성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핵심은 규제의 강도가 아니라 설계 방식에 있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듯 중요한 것은 '금지'가 아니라 '기준'이다. 명확한 거리 기준, 높이 제한, 조망 관리 기준이 존재할 때 개발과 보존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

해법은 분명하다. 첫째, 세계유산지구 내에서 시행하는 영향평가는 1회 원칙으로 정리해 중복을 제거해야 한다. 둘째, 세계유산 영향 범위를 거리와 경관 기준 등으로 수치화해 예측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초기 단계에서 국가유산청과 사전 협의를 마친 사업에 대해서는 추가 규제를 배제하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도시는 멈출 수 없다. 동시에 역사도 포기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조율하느냐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가 아니라 합의의 설계다. 역사 보존과 개발의 갈등을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이를 새로운 도시 경쟁력으로 전환할 것인지, 선택의 시간은 지금이다.

/사진제공=건설주택정책연구원
/사진제공=건설주택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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