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번호 받아적으이소!" SNS·유세차 넘어 '진짜 전번' 까는 후보들

"제 번호 받아적으이소!" SNS·유세차 넘어 '진짜 전번' 까는 후보들

김지은 기자
2026.05.12 14:14

[the300]

6.3 재보궐선거 인천 계양을에 출마하는 김남준 후보의 명함에는 휴대폰 번호와 SNS 아이디 등이 적혀있다. 휴대폰 번호는 모자이크 처리. /사진=김남준 캠프 제공
6.3 재보궐선거 인천 계양을에 출마하는 김남준 후보의 명함에는 휴대폰 번호와 SNS 아이디 등이 적혀있다. 휴대폰 번호는 모자이크 처리. /사진=김남준 캠프 제공

"옛날 번호 말고, 새 번호 부를테니 받아 적으이소(적으세요)!"

6.3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며 본인의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는 후보들이 늘어난다. 세대를 가리지 않고 직접 소통하겠다는 의지다. 유권자들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실질적인 정책 체감 효과를 높이겠다는 취지도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작은 대구시장에 출마한 김부겸 민주당 후보다. 그는 지난 3월 대구에서 출마 선언을 하며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깜짝 공개했다. 당시 그는 "아마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번호는 제 옛 번호일 것"이라며 "제 번호는, 010-3170-XXXX"라고 또박또박 숫자를 불렀다.

김 후보는 그날 이후 약 일주일 만에 3000건 이상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직접 전화가 걸려오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한 측근은 "당시 20분 정도 김 후보에게 선거관련 업무보고를 하는 동안 정확히 6건의 전화가 왔다"며 "'진짜 김부겸씨냐'를 묻고 끊는 전화도 있었다"고 했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정원오 민주당 후보 역시 연일 SNS(소셜미디어)에 "직통 소통, 문자 주세요"라며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공개했다. 성동구청장 시절 직통 문자 민원 서비스로 화제를 모았던 정 후보는 계속해서 같은 번호를 활용해 민원을 듣고 있다.

울산시장에 출마한 김상욱 민주당 후보도 선거 운동 도중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는 지난 10일 '김상욱TV' 유튜브에서 학부모와 방과 후 돌봄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 "제 전화번호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연락 달라"고 말했다.

아예 명함에 전화번호를 '박는' 경우도 있다. 6·3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전은수, 김남준 후보가 대표적이다. 박수현 충남시장 후보, 박찬대 인천시장 후보 등도 이름과 사진, 연락처 등을 명함에 새겼다.

6.3 재보궐선거 충남 아산을에 출마하는 전은수 후보 명함에는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다. 휴대폰 번호는 모자이크 처리. /사진=전은수 캠프 제공
6.3 재보궐선거 충남 아산을에 출마하는 전은수 후보 명함에는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다. 휴대폰 번호는 모자이크 처리. /사진=전은수 캠프 제공

전화번호는 사생활의 영역에 포함되는 개인정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치인들의 전화번호는 비밀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제는 후보들이 먼저 번호를 공개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잘못하면 더 직접적으로 욕을 먹더라도, 정치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의지다.

민원을 제기하는 유권자 입장에서는 후보에게 직접 연락하면 오히려 익명이 보장된다. 후보 입장에서는 민원의 맥락이나 뉘앙스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민원 내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절차도 줄어든다.

특히 SNS 사용이 어려운 고령자층에게는 혁신적 변화다. 쌍방향 소통은 사실상 전화번호 공개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부겸 후보 측은 "전화를 하면 최저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사연 등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정말 많다"며 "SNS로 사연을 쓰면 글로 남기 때문에 자칫 신상이 공개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화 통화는 시민들의 부담이 덜하다"고 했다. 또한 "후보자 입장에서도 현장 분위기, 여론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남준 후보 측은 "대부분 명함을 보고 연락주시는 분들은 나이 드신 분들"이라고 했다. 그는 "전화번호를 적어 놓으면 SNS 이용이 어려운 분들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후보자가 연락을 직접 받기 때문에 실무자와 바로 연결해줄 수 있고 더 세심하게 챙길 수 있다"고 했다.

전화·문자로 접수된 민원 목소리는 실제 공약 설계 과정에서 활용된다. 정원오 후보는 최근 문자를 보낸 서울 시민을 만나 직접 인터뷰하는 '찾아가는 서울人터뷰'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그동안 북촌 상인들을 만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청취하고 장애인을 만나 장애인콜택시 이용 불편 사항을 접수했다.

김부겸 후보 측은 민원 문자를 AI(인공지능)로 정리한 '희망 직통' 사이트도 만들었다. 실시간으로 김 후보가 받은 문자들을 공유하는데, 이날까지 접수된 것만 6528건에 달한다. 김 후보는 지역별 접수량, 키워드를 분석해 정책 공약에 반영하고 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이같은 흐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유권자들이 후보 전화번호를 알게 되고 직접 소통하면서 '정치인도 나와 같은 생활 세계에 사는구나' 생각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기득권 정치의 문턱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며 "동시에 내가 의견을 전달하면 후보가 충분히 의견을 들어준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정치 체감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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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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