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총 1,441 건
"바이오톡스텍 건물을 짓는데만 180억원, 장비를 갖추는데 50억원 등 총 230억원 이상이 들었습니다. 창업한지 10년도 안된 바이오회사가 감당해내기 쉽지 않은 투자금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비임상 CRO(임상시험대행)와 관련해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연구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강종구 바이오톡스텍 대표는 "매출이 나오는 대로 고스란히 재투자했다"며 "지금은 일본의 손꼽히는 제약사들도 비임상시험을 의뢰하는등 본격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올해 하반기에 수주한 계약규모만 150억원으로 작년 매출 100억원을 이미 뛰어 넘었다. 지난해 1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바이오톡스텍은 오는 2012년 연간 매출 300억원, 영업이익률 25%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종구 대표는 "1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수천억원을 투자한 국가연구기관보다 우수한 기술과 시설을 갖춘 것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며 "실험실 벤처에서 시작해 성공한 바이오벤처의 모델로
유재한(55) 초대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정통 재무관료(행시 20회) 출신이다. 지난 1977년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유 사장은 재정경제부 산업금융과장, 금융정책과장, 정책조정국장,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금융정보원(FIU) 원장을 지냈다. 그의 공직생활은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으로 채워진다. 외환위기를 전후로 산업금융과장과 금융정책과장을 지내며 구조조정 정책을 지휘했다. 부실채권정리기금과 예금보험기금 입안에도 직접 참여했다. 부실채권정리기금은 1996년부터 법안 준비를 해왔는데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정식으로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나흘 뒤부터 발효돼 사태 해결에 유용한 제도 틀로 활용됐다. 구조조정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도 그의 손을 거쳤다. 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구조조정 지원 기구 역시 탄생 뒤엔 유 사장이 있었다. 지난 2002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시절엔 서울은행, 서울은행, 대한생명, 조흥은행 매각
"가만히 앉아서 편하게 진행했던 정책금융의 관행을 깨고 찾아가는 서비스를 실천할 겁니다." 최근 출범한 정책금융공사의 초대 사령탑, 유재한 사장의 각오는 남달랐다. 정통 경제 관료 출신으로 정치권에서 잠시 외도를 했던 그가 최고경영자(CEO) 직함을 쓰게 된 것은 2007년 주택금융공사 사장에 이어 2번째다. 대개 회사 이름에 '금융'이나 '공사'가 들어가면 '신의 직장'으로 분류된다. 두 단어가 모두 포함된 자리를 2차례 맡았으니 부러움의 대상이 될 법 하다. 유 사장은 이런 시각에 "큰 영광"이라고 웃어 넘기면서 "정책금융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책금융공사는 한국전력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등 산업은행이 보유한 15조 원 규모의 공기업 주식을 넘겨받아 자산 28조원 규모로 설립됐다. 또한 하이닉스나 현대건설 등 굵직한 기업은 물론 글로벌 투자은행을 지향하는 산은금융지주의 지분도 갖고 있다. 정부나 금융시장, 재계 등에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기관
"법률구조공단에 소속된 모든 변호사들을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육성해 대형 로펌보다 뛰어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입니다" 지난해 제9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에 취임한 정홍원(65·사법시험 14회) 이사장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법률구조공단이 제공하는 법률서비스가 무료이기 때문에 대형 로펌 등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이사장의 자존심과 신념은 남다르다. 법률 사각지대에 놓인 서민들의 인권을 보호하려면 로펌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춰야한다는 생각으로 불철주야 뛰고 있다. 그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난달 전문 변호사 양성을 위한 교육기획을 완성했다. 최근에는 숨어있는 법률구조 대상자를 찾아내고 서비스 영역을 전국으로 넓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정 이사장은 "공단의 도움으로 어려운 싸움에서 이긴 서민들이 감사의 편지를 보내올 때 힘이 솟는다"며 "전 직원들이 일심동체가 돼 보다 나
최연소 여성 국회의원에 이어 최연소 여성 정부 산하기관장이 된 김희정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원장(39). 그래서인지 그가 통합조직의 수장으로 발탁된 것만으로도 화제였다. 3개 기관이 합쳐 500명 넘는 통합기관을 이끌기엔 연륜이나 전문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전직 국회의원 출신이니 정치인을 기관장으로 모셔야 하는 직원들의 부담도 적지 않았을 터. 그러나 3개월이 지난 지금 시점에선 '우려'보다 '기대'가 더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보폭이 넓어졌다. 정치인 출신답게 김 원장이 정부와 국회 등을 두루 찾아다니며 기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홍보한 덕분이다. 김 원장은 말한다. "여기 와보고 놀랐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많이 하고 있고, 이렇게 우수한 전문가가 포진하고 있는데, 왜 외부에서 제대로 알지 못할까. 이제부터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알리려고 한다." 초대 원장으로 선임될 당시 김 원장은 출산한 지 한달도 안됐을 때다. 몸조리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김희정 원장은 요즘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원장으로 취임한 지 3개월이 어떻게 흘렀는지 까마득할 정도다. 그가 이끌고 있는 KISA는 정부 산하기관 개편에 따라 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단 3개 기관이 통합돼 지난 7월 새로 출범했다. 취임 후 업무파악도 되기 전에 7·7 디도스(DDoS) 사고 대응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여기에 국정감사까지 받아야 했다. 조직통합에 따른 재정비작업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저런 현안까지 겹치다보니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최근 사무실 이전을 막 끝내고 집무실 정리를 하는 김 원장을 만나봤다. 첫 아이를 출산한 지 한달도 안돼 취임한 김 원장은 앞으로 일이 더 바빠질 것같다고 했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3개 조직을 하나의 조직문화로 융화하는 일부터 KISA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일까지 모두 그를 바쁘게 만든다. 김 원장은 "KISA는 새로운 기관으로 탈바꿈할 것이다"라면서 "
1947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맹정주 강남구청장은 1960~1980년대 한국 경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다섯 번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계획, 국민연금제도와 의료보험 확대 등 사회보장제도 수립에 참여했다. 30년 공직생활을 마치고 2001년 한국증권금융 CEO로 변신, 인사제도 개혁과 회계 투명성 등의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생활의 모토라고 한다. 행정고시에 합격, 요직을 두루 거쳤지만 1급 공무원을 마지막으로 공직생활을 접은 것은, 관료사회 문화에 얽매이지 않는 강한 '소신' 때문이라고 지인들은 평가한다. 그의 구정활동은 과거의 궤적과 다르지 않다. "강남구를 존경받는 구로 만들겠다"는 구정 목표는 출산 장려정책과 탄소 마일리지 정책 등 수많은 히트상품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됐고 나눔과 봉사로 대표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구현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 재임에 도전하는 그의 수첩에는 구민을 위
서울시 면적의 6.53%(35.94k㎢)를 차지하는 강남구. 25개 자치구 중 하나인 이곳은 1980년대 이후 진행된 '수도 서울 개발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독특한 지위를 점한다. 고가 아파트와 명문 학군, 문화와 유행의 선도 지역으로 대표되며 '대한민국 특별구역'으로 불리지만 이른바 '안티강남'이라는 정서가 존재할 만큼 부러움과 질시를 동시에 받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지금 강남권 재건축의 대명사격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대한 예비안전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내년에는 개포 주공아파트 5~7단지 등 다른 중층 아파트 단지도 예정돼 있어 재건축시장의 뜨거운 관심은 계속될 전망이다. 2006년 7월 취임, 민선4기 구청장으로 3년을 보낸 맹정주 강남구청장을 만나 '미래 강남'에 대한 비전과 현안을 들어봤다. -재임 중 벌이셨던 사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여러 가지 일이 있지만 60여 자치구가 배워간 '새주소 시스템'이 먼저 생각납니다. 또 강남구에 아기들의 우
김호중 동부증권 사장(58·왼쪽 아래)은 30여년을 여의도 증권가에서 보낸 '골수 증권맨'이다. 1978년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 대한투자신탁(현 하나대투증권)에 입사, 이후 27년을 대한투자신탁에 몸담았다. 대한투자신탁 둔산·천호동 지점장을 거쳐 종합기획부장, 운용관리부장 등을 역임했다. 2000년 대한투자증권 부사장에 임명된 후 2001년 대한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대한투자신탁 내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2005년 대한투신이 민영화되며 동부자산운용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2007년 6월 동부증권으로 옮겨 2년여 동안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동부자산운용 대표로 재직 중 운용인력을 늘리고 제대로 된 운용시스템을 갖추는 '정공법'으로 수탁고를 6배 늘린 일화가 유명하다. 김 사장은 "금융회사의 가장 큰 자산은 인력"이라는 신념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금융위기 당시 "어차피 지금같은 시기에는 돈을 벌
-"KT QOOK 서비스와 제휴 리테일 사업 강화" -"IB 컨설팅 완료…SF본부 중심" -"일류문화·질적 최고 강조…변화 선도" 동부증권에게 지난 2년은 변화와 도전의 시간이었다. 변화전에는 사업구색이나 규모,성과, 어느 면에서건 증권사로서 명함을 내밀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조직문화도 '은둔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보수적이었고 직원들의 일체감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증권회사'다워졌다. 30여개 증권사 가운데 23~24위의 하위권이던 동부증권은 14~16위의 중위권 수준까지 성장했다. 지점도 15개가 늘어 총 45개가 됐다. 이같은 변화를 선두에서 이끈 '사령관'이 바로 김호중 사장(사진)이다. 2007년 6월 사장취임 후 동부증권의 히딩크감독으로 역할하며 회사를 '리모델링'했다. 사실상 회사를 다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증권회사로서 기본인 소매영업망을 구축하고 확장했다. 자산관리본부도 만들어 상품을 Happy+라는 브랜드로 판매망에 올리기 시작했다. 기관투자
정확한 개인신용정보 제공해 불이익 없게… 내년 매출 1조 기대 아시아기업 신용평가와 함께 그룹사업 패키지로 해외시장 진출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확산된 지난해 10월 영국계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고 2009년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그 직후 국내 한 신용평가회사는 "한국의 위기는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며 피치의 전망을 정면 반박했다. 원유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는데다 환율 상승으로 경상수지가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실제 한국경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르게 회복됐고, 올해 경상수지도 300억달러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피치에 정면 대응한 곳은 국내 최대 금융인프라 회사인 나이스그룹의 한신정평가다. 나이스그룹은 신용평가 외에도 개인크레디트뷰로(CB), 채권평가, 금융자동화기기(ATM·CD), 신
코원시스템 박남규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선 드물게 벤처업계에 성공한 CEO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기업 영상미디어연구소를 거쳐 1995년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비록 기술 공학도이지만 그의 경영능력은 이미 검증 단계를 넘어섰다. 그가 코원시스템을 이끄는 14년 동안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과 애플, 삼성, 소니 등 글로벌 기업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소형 IT기기시장에서 입지를 더욱 넓히고 있는 유일한 중소기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무엇보다 기술을 보는 '시각'과 함께 '직관적인 판단력'이 박 사장만의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박 사장은 "하루에도 수십번 판단을 내1965년 경북 대구생릴 정도로 경영은 판단의 연속"이라며 "회사가 잘될 수 있었던 것은 이제껏 제대로 된 판단이 많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업을 하다 보면 무수한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되는데 이때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가 작게는 사업의 성패, 크게는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