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오늘도 온라인에서는 수십, 수백개의 이슈들이 뜨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흘리듯 넘겨버리는 무수한 이슈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를 뽑아 그 한꺼풀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짚어본다.
오늘도 온라인에서는 수십, 수백개의 이슈들이 뜨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흘리듯 넘겨버리는 무수한 이슈들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이슈를 뽑아 그 한꺼풀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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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한명이었던 시몬(Simon)은 '테러리스트'였다. 민족주의 정당인 '혁명당'(셀롯: Zelotes) 당원이었던 시몬은 당시 이스라엘을 식민 지배하던 로마의 군대 뿐 아니라 로마에 협력하는 동족들을 상대로도 살인과 약탈 등의 테러를 저질렀다. 처음에 시몬은 '비폭력주의'를 견지한 예수와 대립했다. 심지어 예수의 제자 중 로마의 세금징수원이었던 마태는 혁명당의 암살 표적 가운데 한명이었다. 그러나 결국 예수의 기적과 설교에 감화된 시몬은 혁명당에서 탈퇴하고 예수의 가장 충직한 제자 중 한명이 됐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포교를 위해 이집트로 떠난 시몬은 '우상숭배'를 금한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현지인들의 신상을 부쉈다. 이에 분노한 현지인들에 의해 시몬은 톱으로 몸이 두동강으로 잘리며 순교한다. (시몬은 기자의 가톨릭 세례명이기도 하다.) 테러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수가 살던 시대 뿐 아니라 선사시대에도 종족 간
요즘은 대부분 'MS 워드'나 '한글'을 쓰지만 예전엔 '워드스타'(WordStar)가 대세였다. 적어도 1986년까진 그랬다. 당시 전세계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지배했던 워드스타는 '마이크로프로'(MicroPro)라는 회사의 작품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다.) 뉴욕 출신의 시모어 루빈스타인이 이끄는 마이크로프로는 1978년 워드스타를 내놓자마자 시장을 평정했다. 컨트롤 키를 활용한 단축키 기능은 당시로선 혁신적이었다. 1984년 마이크로프로의 매출액은 전세계 소프트웨어 업계 1위였다. MS보다도 연 500만달러를 더 벌었다. 그러나 3년 뒤 이 회사는 워드프로세서 시장을 MS 등에 고스란히 넘겨줬고, 지금은 잊혀진 회사가 됐다. 마이크로프로는 자멸했다. 사단이 난 건 1985년이다. 회사는 주력제품인 워드스타와는 다른 신제품 '워드스타2000'을 내놨다. 문제는 그후에도 계속 워드스타와 워드스타2000 각각의 업그레이드판이 나왔다는 점이다. 워드스타 시리즈와 워드스타2000 시
2009년 7월1일, 충남 당진 아산만 소재 동부제철 공장. 기자의 눈에 비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의 40년 숙원사업이었던 전기로 공장의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기자간담회 자리. 김 회장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여느 재계 2∼3세들과는 다른 '창업 1세대'로서의 카리스마가 넘쳐났다. 당시 완공된 전기로 공장은 단일 공장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였다. 총 8700억원이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그룹의 빚이 크게 불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내년부턴 부채비율이 확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 회장의 희망섞인 예상은 빗나갔다. 동부그룹의 부채비율은 이후에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반도체 계열사인 동부하이텍에서 시작된 유동성 위기가 그룹 전체로 번져나갔다. 동부제철은 전기요금도 못 낼 정도로 자금난에 허덕이다 끝내 채권단의 손으로 넘어갔다. 결국 김 회장의 40년 숙원이었던 당진 전기로 공장은 지난달 가동이 중단됐다. 동부그룹의
'진상 테스트'(Asshole tests)라는 게 있다. 같은 직장의 누군가가 '진상'인지 여부를 가려내는 테스트다. 얼핏 듣기엔 저잣거리에서 장난스레 만들어진 테스트 같다. 하지만 미국 서부 최고의 명문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로버트 서튼(Robert I. Sutton) 교수가 직접 고안해낸 테스트다. 심지어 이 내용으로 책도 썼다. 책 제목은 '진상 방지법'(The No Asshole Rule). 부제는 '교양있는 직장 만들기, 그리고 야만적인 직장에서 살아남기'다. 2007년 미국 경영학계를 뒤집어 놓은 베스트셀러다. 한국에선 '또라이 제로 조직'이란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테스트는 간단하다. 두가지 질문 모두에 '예'라고 답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진상'이다. 첫번째 질문은 "그 사람을 상대한 뒤 압박이나 모욕감을 느끼는가?"(After encountering the person, do people feel oppressed, humiliated?)이다. 두번째 질문은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TV 드라마 '미생'말고 웹툰 '미생' 얘기다. 드라마 '미생'은 웹툰 '미생'의 흐름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웹툰의 일부 에피소드가 드라마에선 아예 통째로 빠지기도 한다. 웹툰의 15∼16편이 그런 경우다. '개고기'와 관련된 '문화적 차이' 문제로 다른 부서와 갈등이 생긴 뒤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은 에피소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내용은 생략하자.) 여기에 웹툰 '미생'의 명대사 가운데 하나가 등장한다. "외길 수순이라면 말을 살 찌워선 안 된다. 버려야 한다". 바둑 연습생 출신의 주인공 장그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바둑 격언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는다. 장그래는 "끝났어야 할 '죽은 말'(곤마)이 계속 이어져 대마가 된 뒤 죽으면 판 자체가 큰일난다"고 했다. 이미 불리해진 상황에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결국 가래로 막는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럴 때
퀴즈 하나! 어떤 작은 초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매년 학년별 학생 수의 변동이 심하다. 이 학교에서 5학년 학급당 학생 수가 15명일 때와 20명일 때, 25명일 때 가운데 언제 학생들의 평균 성적이 가장 좋았을까? 물론 학교의 위치와 교장은 그대로다. 교사진도 거의 변함이 없었다. 일반적인 상식대로 학급당 학생 수가 적을수록 성적이 좋았을까? 정답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캐롤라인 헉스비 교수가 1993∼2005년 미국 코네티컷주의 모든 초등학교들을 관찰해 얻은 결과다.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과의 헉스비 교수는 다른 모든 조건이 같을 때 학급당 학생 수와 성적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그가 얻은 상관계수는 정확히 '0'이었다. 학급당 학생 수와 성적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학생 수가 적을수록 학생들의 성적에 도움이 된다'는 일반적인 상식과 배치된다. 그렇다면 교사의 입장에선 어떨까? 학생 수가 적을수록 더 잘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세계적인 베스트
# 1077년 1월27일 밤, 이탈리아 북부 카노사에는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성문 앞 눈밭에 한 남자가 맨발로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있었다. 그렇게 사흘째였다. 그는 다름아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였다. 교황의 뜻을 어기고 대주교 임명권을 행사한 '죄'로 그는 얼마 전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생각보다 강한 교황의 '반격'에 황제를 따르던 주교와 귀족들도 모두 등을 돌렸다. 힘의 차이를 절감한 황제는 교황이 머물고 있던 카노사성을 찾아가 눈물로 '파문 철회'를 호소했다. 교황은 눈보라 속에서 무릎 꿇고 고개 숙인 황제를 사흘동안 지켜본 뒤에야 '파문'을 거뒀다. 바로 '카노사의 굴욕'이다. 이는 '종교권력'과 '세속권력'이 정면으로 부딪친 사례지만, 동시에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이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와신상담'한 황제는 3년 뒤 교황을 상대로 설욕에 성공한다. 주교와 귀족들을 규합해 오히려 교황을 폐위시킨다. '현재
# 미국 남북전쟁 초반 명문가 출신 장교들은 삼류집안 출신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낮잡아 봤다. 북군 주력 포토맥군을 이끌던 조지 매클렌런 장군도 그 중 하나였다. 매클렌런은 링컨에게 좀처럼 전황을 자세히 알리지 않았다. 링컨은 그런 그에게 더 자세히 보고하라고 닦달했다. 기분이 상한 매클렐런은 링컨을 놀리기로 마음 먹었다. 링컨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대통령 각하, 암소 6마리를 포획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링컨의 답장은 이랬다. "장군, 젖을 짜시오(milk them)" # 그보다 몇년 전인 1858년, 링컨이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에 나갔을 때 일이다. 상대방인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라스 후보는 링컨과 노예제 문제를 놓고 공개 토론을 벌이던 중 링컨을 향해 "두 얼굴을 가진 자"라고 비난했다. 이에 링컨은 자신의 약점인 외모를 웃음의 소재로 승화시켰다. "여러분, 제가 두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면 지금 이 얼굴을 하고 다니겠습니까?" 링컨이 오늘날까지 미국
# 1995년 12월11일 저녁, 미국 동부 보스턴 인근 로렌스시(市). '쾅'하는 굉음과 함께 커다란 불기둥이 치솟았다. 대형 합성섬유 업체 몰든밀스(Malden Miils)의 공장이 폭발과 함께 화염에 휩싸였다. 공장의 자체 소방대가 곧장 출동했지만 초기 진화에 실패했다. 로렌스시 소방대는 20분 뒤에나 도착했다. 결국 공장의 3분의 1이 잿더미로 변했다. 33명이 다치고 5억달러(5200억원) 상당의 피해가 났다. 시 당국은 초기 대응 실패의 책임을 물어 회사를 소방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애런 퓨어스타인 사장은 발끈해 "늦게 도착한 시 소방대에 책임이 있다"는 반박 논리를 준비했다. 그러나 제프 바우먼 마케팅이사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오히려 시 소방대를 우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의 주장이 채택됐다. 회사는 소송에서 "시 소방대가 공장 소방대를 잘 지휘해준 덕분에 결국 진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시 소방대도 회사에 유리한 증언으로 화답했
# 1998년 4월 어느 날 서울 남산 힐튼호텔,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 강봉균 경제수석이 마주 앉았다. 외환위기를 극복할 방안에 대해 서로 상의해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였다. 김 회장이 열변을 토했다. "우리가 올해 수출을 조금만 더 하면 500억달러 무역흑자가 난다. 그걸로 IMF(국제통화기금)에 빌린 돈 다 갚고도 남고, 내년에 500억달러 흑자나면 리저브(외환보유고)가 된다. (중략) 옛날 박정희 대통령 때는 수출확대회의를 해서 어려운 것까지 풀어주면서 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강 수석은 "이제 시장경제 중심으로 하니 정부가 나서서 그런 것 못 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발끈하며 쏘아붙였다. "그러면 강 수석은 시장경제 하는데 무엇 때문에 거기 앉아 있나? (중략) 시장 중심이면 청와대 경제수석이고 비서관이고 필요 없겠네". 김 전 회장이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밝힌 내용이다. 당시 사건으로 강 수석과 사이
#1. 유치원 교실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교사 스텔라가 수업 중인 교실에서 한 여자아이는 교실을 가로질러 옆으로 재주넘기를 했다. 한 남자아이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여섯명의 아이들은 사실상 교사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이 와중에도 교사 스텔라는 한 여자아이와 마주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 여자아이에 가려 스텔라를 볼 수 없었다. 나머지 아이들 중 누구도 스텔라에 관심이 없었고, 스텔라 역시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2. 한 초등학교 3학년 수업 시간. 교사는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들은 딴 짓을 하고 있었다. 맨 앞에 앉은 아이 한 명이 번쩍 손을 들었다. 교사는 즉시 팔을 뻗어 그 아이의 손목을 잡고 끌어내렸다. 교사는 그 아이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미국 버지니아대 커리 교육대학원의 로버트 피안타(Robert C. Pianta) 학장과 브리짓 함르(Bridget K. Hamre) 교수가 연
1597년 9월16일(음력) 오전 6시30분, 진도와 해남 사이 좁은 수로. 조류는 초속 2m 이상의 속도로 북서쪽을 향해 흘렀다. 날렵한 모양의 왜선 세키부네(關船) 133척이 조류를 타고 빠른 속도로 해협에 들어섰다. 판옥선 13척이 일자로 늘어선 채 이들을 맞았다. 오전 8시, 양쪽의 거리가 250m쯤 됐을 때 판옥선의 현자총통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포탄이 쏟아졌고 왜선들이 차례로 격파됐다. 왜선들은 조총의 유효 사정거리인 50m까지 접근을 시도했다. 그러나 대부분 가까이 가기도 전에 포탄에 맞아 수장됐다. 오전 10시10분, 조류가 초속 4m 수준으로 빨라졌다. 바닥이 V자 모양으로 좁은 왜선들이 조류에 밀리면서 진형이 흐트러졌다. 선회를 시도하던 일부 왜선이 다른 배와 엉키기면서 진형은 더욱 엉망이 됐다. 오후 12시21분, 조류가 남동 방향으로 급변했다. 오후 2시40분, 조류는 초당 2.7m까지 빨라졌다. 왜선들은 조류에 밀려 판옥선에서 더욱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