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공주님, '진상 테스트' 받아보세요"

"땅콩공주님, '진상 테스트' 받아보세요"

이상배 기자
2014.12.12 17:21

[the300] [이슈 인사이트] 직장 내 '진상 행태'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진상 테스트'(Asshole tests)라는 게 있다. 같은 직장의 누군가가 '진상'인지 여부를 가려내는 테스트다. 얼핏 듣기엔 저잣거리에서 장난스레 만들어진 테스트 같다. 하지만 미국 서부 최고의 명문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로버트 서튼(Robert I. Sutton) 교수가 직접 고안해낸 테스트다.

심지어 이 내용으로 책도 썼다. 책 제목은 '진상 방지법'(The No Asshole Rule). 부제는 '교양있는 직장 만들기, 그리고 야만적인 직장에서 살아남기'다. 2007년 미국 경영학계를 뒤집어 놓은 베스트셀러다. 한국에선 '또라이 제로 조직'이란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테스트는 간단하다. 두가지 질문 모두에 '예'라고 답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진상'이다. 첫번째 질문은 "그 사람을 상대한 뒤 압박이나 모욕감을 느끼는가?"(After encountering the person, do people feel oppressed, humiliated?)이다. 두번째 질문은 "그 사람이 주로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는가?"(Does the person target people who are less powerful than him/her?)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두번째 질문이다. '진상'들의 핵심적인 공통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한마디로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다는 점이다. 서튼 교수에 따르면 직장에서 나타나는 '진상 행태' 가운데 직속상관 등 윗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단 1%에 불과하다. 반면 부하직원 또는 후배가 희생양이 되는 경우는 최고 80%에 달한다. 나머지는 동료들 사이에 나타난다.

여기서 '진상 행태'란 △욕설 등 모욕적인 언행(Insults) △성추행 등 의도하지 않은 신체 접촉(Unsolicited touching) △위협 또는 협박(Threats) △빈정대기(Sarcasm)△창피주기(Humiliation) 등을 말한다.

이런 '진상 행태'가 나타나는 빈도는 어떨까? 서튼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800명의 직장인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20%가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 이상 직장에서 '진상 행태'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다"고 응답했다. 또 10%가 "매일 직장에서 '진상 행태'를 목격한다"고 답했다.

좀 더 심각한(?) 결과도 있다. 캐나다에서 216명의 화이트컬러 직장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무려 50%가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 이상 직장에서 '진상 행태'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다"고 했다. 또 약 25%가 "매일 직장에서 '진상 행태'를 목격한다"고 응답했다. 호주에서는 조사 대상 직장인의 31%가 일상적으로 '언어적 학대'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쯤되면 '직장'은 '전쟁터' 정도가 아니라 '지옥'에 가깝다.

'감정적 피학대'가 잦은 이른바 '감정 노동자'로는 항공기 승무원, 콜센터 직원, 은행 텔러 등이 대표적이다. 대개는 고객이 가해자이지만, 때론 상사가 학대자가 되기도 한다.

뉴욕 JKF공항에서 승무원에게 폭언을 퍼붓는 것도 모자라 활주로로 향하던 항공기를 되돌리고 승무원까지 내리게 한 이도 그 항공사의 부사장으로 있던 오너 3세였다. '땅콩', 정확하게는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건넸다는 이유였다. 비난 여론에 밀려 부사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국토교통부의 조사까지 받았다. 회장인 부친은 딸을 대신해 직접 나서 국민들 앞에 사과했다. '진상'이 직원들의 정신 건강 뿐 아니라 기업 이미지에까지 타격을 입힌 사례다.

서튼 교수에 따르면 직장에서 '진상 행태'를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예 '진상'을 직장에 들여놓지 않는 것이다.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입사 지원자가 면접을 보러 올 때 반드시 자사의 항공기를 타게 한다. 만약 그 지원자가 승무원들에게 무례하게 군다면 '진상'으로 분류돼 면접을 보기도 전에 '불합격' 처리된다. 물론 그 '진상'이 오너 3세라면 별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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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장입니다.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2002년 머니투데이 입사 △청와대, 국회, 검찰 및 법원, 기재부, 산자부, 공정위, 대기업, 거래소 및 증권사, IT 업계 등 출입 △2019∼2020년 뉴욕특파원 △2021∼2022년 경제부장 △2023년∼ 정치부장 △저서: '리더의 자격'(북투데이), '앞으로 5년, 결정적 미래'(비즈니스북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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