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머니투데이 데스크들이 금융, 증권, 산업, IT, 정치, 경제, 사회 및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취재현장에서 갈고 닦은 날카로운 풍자와 비평을 통해 혼란스러운 세상, '중심' 잃지 않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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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선과 악의 대결장이 아니다. 선과 악의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저널리즘의 의무다." 컬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 종신교수이자 뉴욕타임스의 명칼럼리스트인 새뮤얼 프리드먼이 자신의 저서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를 통해 후배 기자들에게 조언한 '세상을 바라보는 바람직한 태도'다. 세상은 흑과 백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회색지대와 다양한 색깔의 인간이 존재하는 만큼 기자는 어느 한쪽의 고정된 시선으로 다른 쪽을 재단해서는 안되며, 언론은 갈등을 만드는 '갈등 조장자'가 아니라 이를 푸는 '갈등 조정자'가 돼야 한다는 조언이다. 세상에는 서로 다른 객체가 수없이 존재하는 만큼 갈등은 늘 존재하는 피할 수 없는 '상수'다. 여기에 조정이라는 '변수'를 대입해 '치유'라는 답을 얻도록 도우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는 비단 언론에만 통하는 얘기는 아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여야는 너나할 것 없이 스스로를 '정의'로 보고, 상대
25일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반쪽정부' '유령정부'라고 한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결국 26일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으니 대통령이 취임식을 하고 외교안보 활동 등을 활발히 펼친다해도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핵심 쟁점은 '유료방송정책'(인터넷TV 및 케이블TV 관련 정책)이다. 국민에게는 의무적으로 내는 KBS 수신료 외에 추가로 시청료를 내고 '웃고 떠드는 콘텐츠'를 더 많이 볼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다. 그런데 이 유료방송정책이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는다니. 야당은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갖고 있던 유료방송정책 기능을 이관하는 데 반대한다. 민주통합당 윤관석 대변인은 26일에도 "방송기능의 미래부 이관은 언론장악과 통제를 위한 제2의 공보처 부활"이라며 반대입장을 밝혔다. 유료방송정책을 미래부로 넘기는 것이 왜 언론장악과 통제인가.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보자. 한 예로 '유료방송 채널정책'이다. 유료방송사들은 채널배정권을 갖는다.
미얀마와 일본은 1940년대 한 때나마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미얀마 건국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이 미얀마에서 영국의 군대를 몰아낼 때 일본의 도움을 받았다. 일본도 미얀마를 같은 불교를 믿는 형제국이라고 불렀다. 당시 미얀마독립군과 일본군의 포로가 된 수천명의 영국군은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죽음의 철도' 건설에 동원되어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이 때 실화를 기초로 '닥터 지바고'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데이비드 린 감독이 '콰이강의 다리'를 만든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웅산은 일본이 겉(建前·다테마에)과 속(本音·혼네)이 다른 나라임을 금방 간파했다. 겉으로는 '대동아공영'의 미명(美名) 아래 미얀마의 수호자를 자처했지만 미얀마를 일본에 종속시키려는 속내를 알아챈 것이다. 기회를 노리던 아웅산은 영국과 다시 손을 잡고 1945년 일본군을 미얀마에서 몰아냈다. 형제국의 인연도 거기까지였다. 그렇다고 두 나라가 원수지간이 된 것은 아니다. 미얀마 군부에는 일본식 교육을 받
"추천할 만한 기업이 별로 없네요." 수익률 부진으로 투자자들의 원성을 사는 PB(프라이빗뱅커)나 기관의 압박에 시달리는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얘기가 아니다. 아시아 유망 기업들의 미국자본 유치를 돕는 한 인사의 말이다. 'IT 강국'으로 통하는 한국에서 투자할 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하니 그 이유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애플리케이션처럼 최근 '뜨고 있는' 서비스를 발빠르게 제공할 수 있는 기업들은 제법 있지만 중장기 수익을 안겨다줄,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확보한 곳이 드물다고 했다. 자체 신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대기업들이나 이들과의 거래 여부에 따라 수익 부침이 심한 중소기업들을 제외하면 외부자본을 유치해 키워볼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이 인사의 하소연은 다루기 쉬운, '아담한' 사이즈의 기업이 없다는 쪽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겠다. 하지만 기업 양극화 해소가 새 정부의 화두가 되는 터라 흘려듣기도 어려웠다. 유망한 중소·중견기업의 부재는
태종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중 한명으로 칭송받는다. 청나라 전성시대를 연 강희제·옹정제· 건륭제의 ‘강건성세(康乾盛世)’도 당 태종 치세를 일컫는 ‘정관지치(貞觀之治)에는 못 미친다는 게 중국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당 태종이 성군으로 평가받는 것은 그의 빼어난 용인술 덕분이다. 그는 기라성 같은 신하들과 적절한 긴장과 협력을 유지하면서 당을 세계제국으로 건설했다.특히 직언을 마다않는 위징을 중용한 것은 용인술의 백미로 평가받는다. 이같은 당 태종의 용인술은 최근 새 정부 조각과정에서 어려움에 부딪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한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향후 5년간 국정을 함께 책임질 사람을 지역과 출신을 불문하고 폭넓게 선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고권력자는 국가경영을 위해서라면 쓴소리를 인내하며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초 위징은 당태종의 가신그룹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당 태종의 경쟁자였던 형(태자)의 최측근이었다. 하지만 태종은 위징의 기개와 능력을
대통령 임기를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이뤄진 '특별사면'을 두고 말들이 많다. 여·야 할 것 없이 사면을 단행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한 인수위 측과 야당 등 특별사면을 비난하는 쪽에서는 '권한 남용'이라며 강한 어조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측은 '법과 원칙'에 따라 역대 정부 중 가장 적은 특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번 특사에 대해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라며 4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특사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 친인척 배제, △임기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 사건 제외, △중소·중견기업인으로서 경제기여도 및 사회봉사 정도, △사회 갈등 해소 등을 특사의 원칙을 제시했지만 이런 원칙에도 어긋나는 특사대상들이 거론되면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사면과 관련된 논란은 오늘날 뿐만 아니라 수백년전 조선시대의 역사 속에서도 계속됐던 모양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사면(赦免
새 정부 5년을 책임질 각 정부부처의 윤곽이 잡혔다. 부처내, 부처간 업무조정작업과 국회 동의 절차가 남아있지만 박근혜 당선인이 펼칠 정책컨트롤타워로써 미래창조과학부는 예상보다 더 큰 조직으로 출범하는 분위기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기초과학에 관련된 R&D(연구개발) 업무부터 신성장동력 기획발굴, '컨텐츠(C)-서비스플랫폼(P)-네트워크(N)-단말기(D)' 전 분야를 아우르는 ICT(정보통신기술) 정책과 통신방송정책 등을 모두 관장한다. 4만여명의 우정사업본부도 지식경제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조직으로 옮겨간다. 부처 개편에는 인수위의 고심흔적이 여기저기서 읽힌다. "방통위 업무의 다수는 진흥과 규제를 명확히 분리하기 어렵다.", "문화부가 콘텐츠 육성을 잘해온데다 디지털 콘텐츠와 일반 콘텐츠 구분이 어렵다. 하지만 'CPND' 생태계를 위해 일부는 미래창조과학부로 보내야한다"는 식의 인수위원 발언들이 그 증거다. 이런 발언들은 'ICT 독임제 부처가 왜 불가능했을까'라는 생각을 더
누구도 시장을 이길 수 없다고 합니다. 주식이나 상품에 투자해 어느 한 시점, 일부 종목을 통해 큰 돈을 벌더라도 언제나 이익을 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게 투자업계의 경험칙입니다. 지난해 격전을 치른 투자자들로선 새해를 맞아 변함 없이 고개를 드는 낙관론의 옆 자리에 새겨둘 경구이기도 합니다. 영원히 승리하는 투자자가 나타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예측력의 한계일 겁니다. 매년 이 무렵이면 전년 투자수익률이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더라도 최소한 신중한 낙관론이 부상하기 마련입니다. 머니투데이 증권부가 실시하는 연례 증시전문가 설문조사에서도 계사년 새해 코스피지수는 '상저하고' 양상을 띠면서 2200선까지 상승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습니다. 이런 컨센서스대로 시장이 움직일지는 솔직히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지난해 조사 때도 60년 만에 찾아온 흑룡의 해, 대통령선거 열풍 등 이런저런 이유로 응답자의 과반수가 코스피 2200~2400을 전망했으나 정작 이 지수는 1997.05로 마감
지난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자국의 경제활동인구중 자영업자 비중이 역대 최고인 14%를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 4년간 새로 증가한 자영업자 가운데 80%가 넘는 사람이 50대 이상이란 점이다. 흔히들 불황의 그림자가 짙을 수록 젊은이들의 '기업가 정신'이 빛을 발한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에서 '고령 근로자'(older workers)의 자영업 진출이 급증하면서 이러한 사회적 통념도 위협받고 있다고 FT는 촌평했다. 일부는 자기가 원해서 자영업을 시작했겠지만, 나이가 들어 재취업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복지가 상대적으로 좋은 영국이 저 정도면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010년 기준 28.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4번째로 높다. 서구 선진국보다 정년이 10년가량이나 짧다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한국 상황
일본 전자산업의 몰락은 한국에게는 '강 건너 불'일까? 역사의 수레바퀴는 결코 일본 전자업계의 몰락이 강 건너 불이 아니라고 말한다. '전자왕국' 일본을 이끌던 대표 3총사인 샤프, 파나소닉(구 마쓰시타), 소니가 침몰하고 있다. 한 때 세계 최고 기업으로 칭송받았던 이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정크' 등급으로 강등됐다. 침몰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많지만, 대체적인 평가는 원만한 내수시장과 자국 기술의 우월성을 맹신해 기술고립에 빠진 '갈라파고스 증후군'과, 금융권 대주주로 인해 도전정신이 사라진 일본 기업문화, 엔화강세, 잦은 정치적 불안 등이 꼽히고 있다. 어느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기업들이 하나둘씩 스러져가고 있다. 한국 전자업체들은 이들의 모습을 보고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다. 전자산업의 역사적 흐름을 볼 때 과거 일본 전자산업의 영화가 현재 한국 전자업체들의 모습과 비슷했듯이, 오늘날 일본 전자기업들의 현
머니투데이가 3년 전부터 시행하는 '대한민국 모바일 앱어워드' 시상제도 덕에 기자생활 그 어느 때보다 젊은 벤처인들을 많이 만나는 '호사'를 누린다. 매월 으뜸앱을 수상한 3∼4개 기업이 3년을 지나면서 80여개에 달한다. 올해도 대상기업을 시상하는 어워드행사가 2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다. 수상기업끼리 매달 '삼겹살 모임'을 한 지도 3년. 이들은 올해 들어 작은 포럼을 만들어 공부를 하게 됐다. 젊은이들이라 다르다. 표정이 밝고, 자신감과 패기가 넘친다. 그들의 도전과 창업·개발스토리를 듣다보면 '인생극장'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감동과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많이 배운다. 삼성SW(소프트웨어) 맴버십에 뽑혀 취업이 보장됐지만 결국 입사를 포기하고 벤처의 길을 선택한 젊은이가 있다. '알람몬'이라는 앱을 만든 말랑스튜디오 김영호 대표는 이미 유명세를 탔다. 이 젊은 벤처 사장의 부모님은 "이왕 시작했는데 중간에서 포기하는 게 말이 되냐"며 오히려 핀잔을 줬다고 한다. 잘 나가던 기
17세기 루이 13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서 주인공 달타냥은 자신을 '시골뜨기'라고 놀린 왕궁 근위대 삼총사와 차례차례 결투를 약속한다. 하지만 결투가 벌어질 찰라 당대 권력자 리슐리외 추기경의 근위병과 시비가 붙어, 달타냥과 삼총사는 근위병을 상대로 멋진 승리를 거두며 서로 동지가 된다. 1803년 4월 어느 날 런던 인근에서 영국군 고위 장교들이 벌인 '결투'는 소설과 달리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결투'에서 맥나마라 해군 대령은 부상을 입었고 몽고메리 보병 중령은 총상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날 오전 두 사람이 공원에 끌고 나온 개 두 마리가 싸움을 벌인 게 화근이었다. 한쪽에서 "저 놈의 개를 때려 잡겠다"고 말하면서 서로 감정이 폭발해 결투 신청으로 이어졌고, 결국 개싸움이 사람을 잡는 지경에 이르렀다. 낭만이나 고상함과 거리가 먼 결투였던 것이다. 19세기 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야만적인 짓이라며 결투를 막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