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포퓰리즘, '잃어버린 10년' 부른다

[광화문] 포퓰리즘, '잃어버린 10년' 부른다

정희경 산업1부장(부국장)
2013.12.1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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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인생 영원 조국에.'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40여년 전 허허벌판이었던 경북 영일만 일대에 종합제철소를 세울 당시 숙소에 걸어 두었다는 좌우명이다. 숙소는 거실에 사무용 소파, 방에는 한쪽 자리 옷장이 전부일 정도로 초라했다. 고인이 직접 붓으로 써 붙였다는, 세로 두 줄의 이 글귀는 날마다 스스로를 담금질하도록 했을 것이다.

그가 '제철보국' 의지를 가슴에 품게 된 것은 당시 제철소 건설에 한일협상 결과로 받은 대일청구권자금 일부가 투입된 것과 무관치 않았다. 우리 민족이 겪었던 수난과 고통의 대가로 받은 소중한 돈으로 짓는 제철소인 만큼 민족과 국가에 보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그의 각오였다고 한다. 허술함이 발견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콘크리트 타설에 문제가 생기면 해당 시설 전체를 폭파시켜 버린 엄격함도 그 연장선이었다.

무모한 시도로 간주됐던 포철은 지난 73년 고로 1기 완성을 시작으로 '산업의 쌀'을 양산하면서 한국 경제 성장의 주춧돌이 됐다. 이런 '영일만의 기적'은 자본과 기술, 경험 등 3가지 없는 상태에서 일군 성과인데 무엇보다 박 명예회장의 기업가 정신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세계 경제사의 기적으로 꼽히는 한국 경제의 성장 비결 역시 불굴의 기업가 정신을 빼 놓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기업에 대해 과감한 투자와 기술 개발에 나서도록 독려했던 정부도 큰 역할을 했다.

포철을 비롯해 그 무렵 기업들의 거침 없는 도전은 자본·기술·경험이 있어도 투자에 나서지 못하는 2013년 12월과 너무나 대조된다. 한 때 주변국의 부러움을 샀던 기업가정신은 중동 국가보다 떨어진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약화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국제기업가정신연구협회가 발표한 기업가정신지수(GEDI)에서 한국은 선진 40개국 가운데 27위로 하위권인 4등급에 속했는데, 이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칠레보다 낮은 수준이다.

기업들이 '도전' 보다 '현상 유지'에 급급하게 된 요인으로 국내 정치적 불활실성이 우선 꼽힌다. 내수와 수출이 동반 부진에 빠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국회에 제출된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해가 거의 바뀌도록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평행선을 달리는 여야 정치인들에게는 체력이 고갈되고 있는 기업들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유로권 경기 회복 지연이나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 등 대외 변수도 복병이지만 해외 경쟁업체들도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이후 5년간 중국과 일본의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이 늘어난 반면 한국은 줄어 들었고, 주력 기업의 실적이 둔화되면서 영업이익률이 일본 기업에 역전됐다는 '경고'들은 묻히는 형국이다. 이런 위기 불감증은 잃어버린 10년, 20년을 자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은 각자의 지지기반(진영)만 챙기는, 포퓰리즘에 빠져 국가적인 현안에서 조차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자유의 미래' 저자인 파리드 자카리아가 미국이 참여 민주주의 환상과 포퓰리즘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했던 것과 유사한 모습이다. 자카리아는 정당은 물론 입법·행정·사법부까지 대중에 개방되면서 정치인들은 국민의 소리를 경청만 한다고 꼬집었다. '국민에 의한' 정치가 오히려 국민을 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미국의 일일 것이다.

기업가 정신의 복원은 한국 경제에 시급한 과제다.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기 전에 지난 10년간 기업가 의욕이 얼마나 꺾였는지를 우선 점검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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