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집엔 여섯 살 난 강아지가 있다. 시추 암컷이다. 나는 원래 개를 좋아하지 않았고, 공동주택에 사는 처지에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강아지를 키우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우리 부부는 안팎으로 일하는 처지라 딸 하나를 간신히 건사하고 있다. 딸아이가 혼자라 외롭다고 아내는 늘 걱정이었고, 6년 전,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딸도 강아지 키우는 게 소원이었다. 물론 나는 조목조목 따져가며 반대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집에 들어와보니 주먹만한 강아지 한 마리가 화장실에서 뒤뚱거리며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었지만 두 권력자가 공모한 것이라면 도리가 없었다. 저렇게 작은 체구의 짐승이니 그리 걸리적거리지는 않겠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때는 몰랐었다. 1년만에 그 강아지가 세 배가 넘게 자랄 줄은.
아내의 설명을 듣자니, 시추라는 강아지는 중국 원산으로 사자라는 뜻이라고 했다. 지능은 낮지만 성격이 좋아서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또 집에 혼자 두어도 외로움을 타거나 집안을 어지럽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두고 보니 정말 그랬다. 제대로 알아듣는 말은 많지 않았지만, 이래저래 구박을 받으면서도 내게는 의연한 충성의 화신이었다. 내가 집에 돌아오면 전력질주로 달려나와 특유의 영접의례를 행하는데, 잠을 자다가도 비칠비칠 달려나오는 수준이었다.
그런 꼴이 우습고 귀찮기도 하고 해서 나는 강아지의 충성의례를 무시하곤 했지만, 강아지는 그러거나 말거나 제 할 일은 한다는 자세로 지금껏 변함없이 영접의례를 행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강아지가 성깔을 부리기 시작했다. 문밖에 사람 기척이 있다거나 하면 맹렬하게 짖어대는데, 안짱다리를 버티고 짖는 품이 하도 장엄하여 흡사 제가 사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또 다른 사람들이 제 몸을 만지는 것을 싫어해서 손님이 와서 귀엽다고 쓰다듬어줄라치면 손을 덥석 물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좀 걱정을 했더니, 가족 내부의 서열에 민감한 개들의 성질은 전적으로 그 집 서열1위의 성질을 닮는다고, 동물행동학 책을 읽은 친구가 말해주었다.
실권과는 무관하게 우리집 강아지가 인정하는 서열1위는 바로 나인데, 그렇다면 강아지의 못된 성질은 나 때문이라는 것이 아닌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또 짖지 말라고 갖은 구박을 했던 내 행동이 강아지에게 그대로 투사되어 있다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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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내게는 강아지가 흡사 거울처럼,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난폭함과 못된 성질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나의 무의식처럼 보였다. 사자라고 착각하고 있는 강아지는 바로 내가 아닌가. 그런 생각에 이르니 나 혼자 속으로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했다.
지난 한 주, 불타버린 남대문 때문에 많이 우울했다. 지붕이 쏟아져내리는 장면은 차마 끔찍해서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가만 들여다보니 무엇보다도 자책감이 컸다. 폐허가 된 남대문의 모습이 내게는, 그 동안 남대문과 그것으로 표상되는 고유의 전통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던 집단 무의식의 생생한 표출로 보였다.
남대문에 불을 지른 것은, 개발 보상에 불만을 품은 한 노인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자신이 아닌가, 어쩌면 그런 꼴이 수치스러워 남대문이 저 스스로 분신을 해버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남대문의 분신을 알지도 못했고 말리지도 못했다는 자책이 아마도 내 우울의 근원인 것 같았다.
내가 상처 입힌 나의 무의식, 우리 집의 난폭한 강아지를 이제는 나도 만져주며 달래고 있는 중이다. 사자라고 착각하고 있는 강아지가 얼마나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내 자신의 모습이고 거울이니 달리 도리가 없지 않은가.
달라질 거라 기대하며 닦을 수 있는 데까지 닦아보는 수밖에. 그러다 보면 거울 속에서 진짜 사자가 튀어나올지도 모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