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에세이]용서의 조건

[MT에세이]용서의 조건

서영채 문학평론가
2008.05.1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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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최민수 씨에 관한 일이 동네 곱창집에서 아저씨들 입방아에 올랐다. 말을 꺼낸 사람은 아저씨가 아니라 홍일점이었던 아줌마였다.

평소 최민수 씨의 터프가이 이미지를 싫어했던 아줌마라 최민수 씨를 두고 멋있다고 한 것은 조금 의외였다.

70대 노인을 찾아간 최민수 씨가 저를 용서하지 마시라고, 제가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행동이야말로 정말 멋진 일이 아니냐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묻는 나 같은 뒷북들이 있어 최민수 씨에 관한 지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야기는 소식통마다 조금씩 달라서, 사건의 진상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종합해보니 분명한 것은 최민수 씨가 길거리에서 70대 노인과 시비를 했다는 것, 그것이 문제가 되어 최민수 씨가 언론 앞에서 사죄를 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평균보다 언성을 높였던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게 기자라고, 벌떼같이 달라붙어 오보를 남발한 기자들과 그런 기사에 놀아난 사람들이 한심하다고 했던 아저씨였다.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그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으냐, 유명인이면서 중인환시리에 시비를 벌인 최민수 씨의 잘못이 크다는 말 또한 지당해 보였다. 그러나 어쨌든, 변명도 않고 용서도 구하지 않은 채, 자진하여 칩거 생활에 들어감으로써 참회를 몸으로 보여준 최민수 씨의 행동은 정말 사내다운 것이라고 했다가, 거기서 왜 사내 타령이 나오느냐는 아줌마의 힐난에 머쓱해진 아저씨도 있었다. 그 끝에 나온 한 성추행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좌중의 이목을 끌었다.

두 남자가 한 여자에게 못할 짓을 한 사건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뒷처리의 문제였다. 분노한 여자가 경찰에 신고하여 두 남자는 크게 곤경에 몰렸고, 그러자 바로 사죄의 자세를 취하여 용서해달라고 여자를 찾기 시작했다. 사건이 일종의 친고죄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피해자가 용서하고 합의를 해주면 검찰 차원에서 기소는 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여자가 요지부동인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누군가가 덧붙였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죄의 진정성인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에서 용서를 구하는 것보다 어떤 합의도 요구하지 않은 채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로 법정을 향해 가는 것, 그것이 진짜 뉘우침이고 사죄일 거라고 했다. 용서는 거래되는 물건이 아니라 선물 같은 것이라면서.

그러자 아줌마가 거들고 나섰다. 살다보면 누구나 잘못을 범할 수도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잘못한 사람이라고 왜 억울한 것이 없겠느냐, 그럼에도 군말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는 정말 멋진 일이라고. 말 한번 잘했다는 이야기는 건너편에 있던 곱창집 주인 아저씨의 입에서 나왔다.

미친 소가 들어오기 전인데도 벌써 손님이 떨어져 죽을 맛이라고 했다. 투표한 손가락들 잘라야 한다는 이야기에, 선거할 날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선거 때마다 잘라대면 손가락 남아나겠느냐는 농담이 덧붙여졌지만, 쇠고기와 손가락 이야기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좀 묘해졌다. 지난 대선 때 투표 문제로 다퉜던 두 아저씨가 그 자리에 있었던 탓이다.

그래도 촛불을 들고 나선 아이들이 있어 좀 위로가 된다는 말이 나오자, 그 집 자식들은 이미 대학을 갔으니 저런 소리를 한다는 핀잔이 바로 따라 나왔다. 요즘 아이들 제 잇속만 챙기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촛불 들고 나선 게 기특하지 않으냐는 말은, 미친 소 들어오기 전에 곱창 대창이나 실컷 먹어두자는 분위기 속에 슬그머니 묻혀 버렸다.

미친 소가 들어와도 곱창 구이를 포기할 수 없다고 나선 용감한 아저씨가 있어, 그거 살신성인이군, 좌중에게 헛웃음칠 기회를 선물해주었다. 하지만, 동물성 사료 먹는 한국 소가 안전하다는 건 누가 보장할 거냐는 그의 반문에는 다들 뒤가 켕겨 했다. 사람에게도 소에게도 용서의 조건이라야 명확한 것이지만 이래저래 곱창 맛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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