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당동 큰 길을 따라 차를 몰고 가던 중이었다. 신호 대기에 걸려 서 있는데 차창 밖으로 산수유 나무가 보였다. 노란 꽃망울들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신호가 바뀌고 자동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하자, 산수유의 그 노란빛이 꽃망울들이었는지 아니면 활짝 피어난 꽃들이었는지 헷갈렸다.
그러나 보니 좀 전에 내가 본 것이 과연 산수유 나무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마음이 서늘해지고 실감이 옅어졌다. 이거 증상이 심상찮다, 봄이 온 게 맞긴 맞구나 싶었다.
3월도 중순이라 봄은 봄인데 뭔가 허전하다 싶어 헤아려보니, 해마다 되풀이되던 아내의 봄나들이 타령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는 건가 싶었다. 매년 봄이 오면, 광양의 매화를 보러 가자고 했고, 섬진강의 봄볕을 쏘이고 싶다고도 했고, 하다못해 어디어디 벚꽃 구경이라도 가자고 했다.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지 여기저기 가고 싶은 데도 많았다. 길 막히는 휴일에 꼭 차를 몰고 나가야 되겠느냐고 하면, 우리 둘 모두 하루 파업하고 애도 학교 하루 쉬게 해서 평일에 서울을 뜨자고 응수했다.
나라 안팎이 지금 어떤 상황인데 놀러가자는 타령이나 하느냐고 나름 준엄하게 힐책하면, 자기 놀건 다 놀면서 봄 나들이만 마다한다고 되치기를 했다. 이런 실랑이를 하다 보면 결국 결혼하던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가곤 했다.
유럽 배낭 여행을 준비하고 있던 처녀에게 결혼 후에 가라고 꼬드긴 사람이 누구냐, 그걸 못한 지 벌써 20년이 가깝다. 물론 나는 기억에 없는 일이라고 잡아뗀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기억에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아내와 연유를 따져 실랑이를 하면 백전백패다. 대책 없이 우기거나 항복하거나 둘 중 하나다. 보통 때는 주로 항복을 하는 편이지만, 봄 나들이 건만은 끝까지 우기는 쪽이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작년에도 이런 실랑이가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건 좀 문제가 아닌가 싶었다. 아직 20년도 채우지 못했는데 아내가 벌써 힘이 떨어져버렸다면, 혹은 이제 아예 포기해버린 거라면 그건 참 곤란한 일이 아닌가.
이번 봄엔 유난히 아내가 우울해하거나 열 받은 일이 많았는데 혹시 그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특히 초등학교 아이 둘이 비참하게 죽어간 소식에 뼈가 아프다고 했다. 막을 수 있는 일을 막지 못했던 것도 그리고 이런 일이 매양 되풀이되는 것도 지겹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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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현장에 전투 경찰이 아니라 사복 체포조를 투입하겠다는, 새 정부 경찰의 장엄한 발표에는 우리 둘 모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백골단을 부활시키겠다는 것인가. 그런 힘 있으면 우리 애들이나 잘 지키라고, 아내는 육두문자를 날리기 직전이었다.
나 역시 올봄 부아가 치미는 일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집 봄 나들이 실랑이가 쉬어간 것이 아내의 힘이 빠져서가 아니라 이런 일 때문이라면 좀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일찍이 19세기 말에 마크 트웨인이 말했다지 않은가. 이 지구와 “빌어먹을 인간”들을 창조한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라고. 의심이 나면 신문을 보라고, 어떤 신문이건 어떤 날짜건 상관없다고.
그러니 너무 열 받지는 마시라 아내여. 봄날이 짧지 않은가. 꽃은 지고 또 어느 순간 속절 없이 봄날은 갈 것이니, 꽃이 만개하면 열일 젖혀놓고 꽃그늘 아래 앉아 조촐하게 술이나 한잔 하는 건 어떨까.
물론 그렇다고 섬진강이나 광양에 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18년을 버텨온 지조가 있으니, 남편으로 하여금 하던 대로 남은 2년을 마저 채워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하시라. 꽃 좋은 식당이거나 어느 집 앞마당이거나 그 어떤 꽃그늘이라도 좋으니 소박한 술잔 앞에 함께 앉을 수 있다면, 우리가 함께 반가워할 수 있는 친구 두엇과 마주 앉을 수 있다면, 꼭 술이 아니더라도 이 초봄의 따스한 햇살과 꽃 기운을 모두 함께 누릴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