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칠월 중순인데 마른장마에 때 이른 무더위다. 팔월 더위를 맞을 일이 아득하다. 아마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더운 여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내년 여름 미국에 가기로 결심했다. 딸아이와 함께 둘이서. 생각만 해도 몸에서 열이 난다.
달포쯤 전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아빠는 미국에 안 가냐고 물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최근 교수인 아빠와 함께 미국 생활을 하고 돌아온 친구가 있는데 영어를 잘하는 게 너무 부럽다고 했다.
말을 듣고 보니 착잡해졌다. 영어 잘하는 친구 부럽다는 건 반가운 일이되, 난데없이 미국에 가자는 건 당황스러웠다. 몇 년 전 나도 일년간 연구년을 보냈지만 외국에 나가지는 않았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한국에서 공부해야 할 게 많았고, 그때를 계기로 새로운 공부 계획을 세웠다. 근대성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 대만 등 이웃나라들의 케이스를 공부하겠다는 것이었다.
내년 여름이면 나는 또 반년의 연구 학기를 얻을 수 있다. 내 계획은 중국에 가는 것, 중국의 근대 문학을 좀더 심도 있게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딸아이 입에서 미국 얘기가 나온 것이다.
중국에 가는 건 어떨까. 외국인 학교가 있을 테니 거기서 중국어와 영어를 공부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중1짜리 딸아이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미국이나 캐나다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지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알고 싶다는 것인데, 거기다 대고 그렇게 말하는 너의 이데올로기가 뭐냐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아내조차도 딸아이에게 동조하고 나섰다. 길지 않은 시간인데 영어 배우는 것만으로 벅찰 거라고. 가까운 동료들도 이구동성이었다. 중1이면 좀 늦었지만 어차피 한번쯤은 치를 일이라는 식이었다. 사면초가 속에서 나는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최소 반년 동안은 꼼짝없이 혼자서 딸아이 뒤치다꺼리를 하게 생겼다. 집 값 갚아나가느라 모아놓은 돈도 없는 판에 경제적 부담도 걱정이고, 한참 속도가 붙고 있는 공부를 중단해야 하는 것도 속이 상했다. 자기는 적극적이니까 보내만 주면 정말 잘 할 거라고 이리저리 말휘갑을 쳐대며 날뛰는 딸아이의 모습만이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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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포기를 하고 나니 마음은 덜 불편해졌지만, 그래도 그 생각만 떠오르면 일단 한숨부터 나온다. 우리는 대체 아직도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면 아이들은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행복한 아이들의 모습에 부모 마음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변에 불쌍한 기러기 아빠들은 갈수록 늘어만 간다. 30년 전에 비해 우리 삶은 모든 면에서 나아졌다 싶은데, 왜 아직 교육만은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교육비 부담도,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학습 강도도 30년 전에 비해 훨씬 더 높아졌는데, 왜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더 불행해져만 가는지 모르겠다.
학생과 교사, 교수 생활을 합하면 삼십년이 넘은 교육경력자인데도 교육문제만 나오면 도무지 모르는 것 투성이다. 물론 아는 것이 아주 없지는 않다. 예를 들자면, 교육에 관한 한, 내부 경쟁의 강도가 교육의 수준을 높여주지는 않는다는 것, 특목고를 늘리고 자사고를 만들어 중학생과 초등학생까지 입시 경쟁 대열에 집어넣는 것이, 우리 아이들을 능력 있고 사려 깊고 배움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우리 가족의 행복에도 보탬보다는 방해가 된다는 것.
7월 30일에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있다고 한다. 교육감은 구체적인 교육 정책들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매우 중요한 자리라고 한다. 특정한 사람이 교육감이 된다고 해서 당장 교육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들이나 행정가들만이 아니라 학부모와 그의 친구들이 함께 걱정하고 지혜를 모은다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게 조금씩 쌓여, 하다못해 내 딸이 부모 노릇을 해야 할 때쯤이라도 이런 식의 푸념과 걱정을 안 해도 된다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닐까.
그런 바람을 이루는 데 이번 선거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이래저래 더운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