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과 문무일 검찰총장

'진격의 거인'과 문무일 검찰총장

이상배 기자
2017.07.28 05:01

[the L]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엘리트 전사들이 후방 배치되는 아이러니···민생 최일선 형사부 출신 검찰총장 나와야

#'진격의 거인'이란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다. 사람을 잡아먹는 정체불명의 거인들과 맞서싸우는 이야기다. 여기서 인간들은 거인을 막기 위해 50m 높이의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성벽은 모두 3겹으로 돼 있다. 가장 안쪽 성벽에는 상류층들이, 그 바깥에는 중산층들이, 그리고 가장 바깥 쪽에는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군대도 3가지 병단으로 나눠져 있다. 가장 안전한 안쪽에는 헌병단, 그 바깥에는 주둔병단이 있고 거인들이 우글거리는 성벽 밖을 정찰하는 임무는 조사병단이 맡고 있다. 아이러니한 건 가장 전투 능력이 뛰어난 '엘리트' 전사들이 거인과 싸울 일이 거의 없는 후방의 헌병단에 배치된다는 점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낮은 병사들은 조사병단에서 거인들과 직접 맞서 싸우다 죽어나간다.

애니메이션 속 이야기라고 웃어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검찰과 경찰도 마찬가지다. 경찰의 임무는 범인을 잡아 수사하는 것이고, 검찰의 역할은 경찰이 잡은 범인을 재판에 넘기는 거다. 그러나 우리나라 검·경 조직에서 엘리트들은 대부분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우선 경찰부터 보자. 경찰들이 일선에서 하는 일은 크게 수사, 정보, 경비로 나뉜다. 이 가운데 정보와 경비는 일반 국민들의 삶과는 큰 관련이 없다. 정보와 경비의 고객은 주로 고위층들이다. 그래서인지 경찰에선 정보 또는 경비 파트에 있어야 출세하기가 쉽다. 일례로 경찰청 수사국에 있는 경정의 숫자는 정보국이나 경비국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매년 수사국에서 배출하는 총경 승진자는 정보국·경비국과 별 차이가 없다. 정보국과 경비국은 승진하기에 유리하고, 수사국은 그만큼 불리하다는 뜻이다.

자연스레 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에는 주로 '정보통' 또는 '경비통'들이 올라간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서비스할 수단이 정보와 경비인데다 자신의 전공도 그쪽이니 경찰청장의 관심은 온통 정보와 경비에 쏠린다. 한해 200만건의 일반 사건에는 별 관심이 없다. 국민들의 삶에 직결되는 민생사건 수사는 이렇게 뒷전으로 밀린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경찰이 넘긴 사건이나 고소·고발 사건을 맡는 곳이 형사부다. 검찰의 '본령'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런데 '형사통'이 검찰총장이 됐단 얘길 들어본 적이 있나? 검찰총장은 대부분 '기획통' 또는 '특수통' '공안통'들이 차지한다. '형사통'이란 말은 잘 쓰이지도 않을 뿐 더러 만에 하나 쓰더라도 당사자에게 결례가 될 수 있다. '잘 나가지 못하는 검사'란 뜻으로 오해할 수 있어서다.

검사라면 누구나 형사부보다는 자체 인지수사를 할 수 있는 특수부·공안부 또는 검찰 수뇌부의 눈에 띌 수 있는 대검찰청 기획부서를 희망한다. 당연히 능력이 뛰어난 엘리트들이 그쪽으로 몰린다. 그런 엘리트 검사들이 출세가도를 달린다. 부장검사, 차장검사, 검사장 등 직급이 올라갈수록 특수통, 공안통 또는 기획통의 비중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이들이 결국 검찰총장 등 검찰 수뇌부가 된다. 그들에게 일반 형사 사건은 관심 밖이다.

재밌는 건 검찰과 경찰의 수뇌부 모두 평소에는 일반 형사 사건에 관심도 없으면서 형사 사건의 수사권을 조정하는 문제만 나오면 사생결단 달려든다는 점이다. 수사권이 어디로 가든 일반 국민 입장에선 별 상관이 없다. 영장 청구권을 검찰이 갖고 있든, 경찰이 가져가든 수사 받는 입장에선 마찬가지다.

국민이 바라는 건 검찰과 경찰이 대통령을 위한 특별 수사나 정보 수집이 아니라 민생과 직결되는 형사 사건에 역량을 집중하는 거다. 지금처럼 엘리트들이 형사 부서를 피하고, 형사통들이 열패감을 겪는 환경에선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부장검사가 되려면 반드시 형사부를 거치게 하겠다는 문무일 검찰총장의 약속은 반갑다.

그러나 그걸론 부족하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형사통이 수장에 오르지 않는 한 엘리트들이 형사 부서로 몰리고, 형사통들이 수사에 열정을 쏟길 기대하긴 어렵다. 더 나아가 문재인정부에서 형사통 검찰총장, 형사통 경찰청장이 나오길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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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장입니다.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2011년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2002년 머니투데이 입사 △청와대, 국회, 검찰 및 법원, 기재부, 산자부, 공정위, 대기업, 거래소 및 증권사, IT 업계 등 출입 △2019∼2020년 뉴욕특파원 △2021∼2022년 경제부장 △2023년∼ 정치부장 △저서: '리더의 자격'(북투데이), '앞으로 5년, 결정적 미래'(비즈니스북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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