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때 압수수색 나간 경찰, 상관 지시로 철수… "국정원 수사 안돼" 공문은 이틀후 도착

4년 전 국가정보원(국정원) 직원의 불법 도청 프로그램 구입·사용 의혹을 조사하던 경찰이 공문 등 명확한 확인 절차 없이 압수수색 현장에서 철수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정원은 경찰이 압수수색 현장에서 철수한 지 이틀이나 지난 후에야 공문을 보내 "국가 기밀과 관련된 사항은 국정원장 허가 없이 조사할 수 없다"고 알렸다.
국정원은 지난해 이 사안을 과거 청산 TF(태스크포스)에서 조사하겠다고 밝혔으나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지난해 말부터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역시 "국정원에서 관련 자료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확인한 '국가정보원 직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 승인 거부'라는 문건은 국정원이 경찰청장 앞으로 보낸 공문으로 2014년 10월22일자다.
공문은 "경기도 수원시 모처에 위치한 국정원 직원 신모씨 자택·컴퓨터·USB(이동식저장장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승인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당시 경찰청은 불법 스마트폰 도청 프로그램 스파이앱을 구입해 사용한 사람들을 추적하던 중 국정원 직원 신씨가 '데이비드 조'라는 이름으로 1400만원을 들여 스파이앱을 구입한 정황을 적발했다.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2014년 10월20일 경기 수원시 조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려던 수사관 김모 경위는 상관의 지시로 현장에서 철수했고 신씨는 무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스파이앱은 타인의 스마트폰에 몰래 설치해 통화목록·주소록·문자메시지·사진·동영상 등을 빼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다. 통화 내용을 도청하고 녹음하는 것은 물론 스마트폰 주변의 소리도 녹음하고 사용자 위치 추적도 가능하다.
국정원은 공문에서 "신씨가 보관 중인 컴퓨터·USB·휴대전화·유무선 공유기는 국정원 국가안전보장 업무와 관련된 직무상 비밀을 포함하고 있어 노출될 경우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 소송법 제111조(공무상 비밀과 압수)에 의거해 영장 집행을 승낙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공문의 접수 일자는 2014년 10월22일로 돼 있다. 압수수색 현장에서 철수한 지 이틀이나 지난 후다. 수사관이 현장에 있을 때는 철수를 지시할 서류상 근거가 없었고 사후에 공문이 온 셈이다.
당시 철수 명령을 받았던 수사관 김 경위는 상관이던 정모 경정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국정원 신씨는 정보통신망 침해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김 경위는 "당시 수사팀에서 현장 철수에 항의하자 국정원에서 부랴부랴 공문을 만들어 발송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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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지시를 내렸던 정 경정은 "믿을만한 채널을 통해 신씨가 국정원 직원이라는 것을 유선상으로 확인했고 추후에 공문을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이틀이 지났더라도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할 수 있는 기간이기 때문에 공문의 효과는 유효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신씨의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수사 지휘 경험이 많은 한 경찰 간부는 "수사 절차상 현장 압수수색 철회 명령 때 공문이 필요하다는 매뉴얼은 없다"면서도 "검찰, 법원까지 거친 압수수색 영장을 철회할 때는 그만큼 명확한 사유가 있어야 하므로 신씨의 신분 확인 과정이 명료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압수수색 거부 근거로 든 법 조항(형사소송법 111조)이 당시 제대로 적용됐는 지도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경찰 출신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111조는 공무원이 소지·보관하는 물건이 직무상의 비밀에 관한 것임을 '신고'한 때에 한해 감독관공서의 승낙 없이 압수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신씨가 USB 등을 공무상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 사전에 신고됐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사 당국은 조사는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다. 김 경위는 "이 사건을 고소한지 반년이 지났지만 검찰은 '국정원이 스파이앱 구입 내역 등을 달라는 검찰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말만 반복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해당 고소 건을 배당받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김 경위의 주장에 "수사 중인 건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적폐청산 TF에서 해당 건을 조사하겠다던 국정원 관계자 역시 "수사 중인 사안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