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대법원 '특혜연수' 사과했지만

[우보세]대법원 '특혜연수' 사과했지만

이태성 기자
2021.11.17 03:0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대법원이 한 법관의 특혜성 해외 연수 논란에 사과했다. 법원행정처의 수차례 설명에도 판사들의 불만이 가라앉지 않자 사법부 2인자인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이 직접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글을 올려 판사들에게 "송구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판사들은 여전히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김 처장의 사과가 '과거와 다른 방법으로 선발을 한 점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데 방점이 찍혔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알고 싶은 것은 어떤 과정으로 해당 판사가 연수를 가게 됐는지다. 이번 사건 이전에는 판사들은 해외연수법관으로 선발되고 이듬해에야 출국할 수 있었다. 연수 대상자로 선발돼야만 본인이 연수(유학)를 갈 기관을 알아보고 허가를 받은 후 출국이 가능해서다.

그런데 A판사는 올해 선발돼 올해 출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행정처가 금지해 온 '교육대상자 선발 전 해외기관 접촉'을 통해서였다. 심지어 행정처는 A판사에게만 미리 선발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A판사는 지난 7월 26일 파견 인사 명령을 받았다. 이후 8월 9일 파견자 공고가 났는데 9일 당일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수 허가, 연수선발 통보, 연수 학교 선정 등 해외 연수를 위한 모든 과정에서 A판사에게만 특혜가 주어진 셈이라 대다수 법관들은 이 모든 특혜가 가능했던 이유를 대법원에 밝혀달라고 요구해왔다. 보수적인 법원 분위기에서 연차가 높지 않은 A판사가 먼저 법원행정처에 '내가 하버드로 연수를 가고 싶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법관 등 윗선의 개입이 있었다는 의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청탁은 없었다'고 수차례 선을 그었지만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판사는 없다. 김 처장의 사과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20여년간 사법부에서 일한 한 판사는 "행정처에 젊은 판사가 전화해서 '하버드로 연수를 가고 싶으니 보내달라'고 말하면 바로 해당 판사 근무지로 통보가 갈 정도로 사법부 분위기가 엄하다"며 "행정처 분위기를 아는 판사일수록 이번 일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지 알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A판사 논란이 터지니까 행정처는 이제부터 그런 방법을 막겠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A판사에게만 특혜를 준 것"이라며 "앞으로는 주의하겠다는데 더 중요한건 이번 일이 왜 일어나는지 밝히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현재 판사들은 그 어느때보다 대법원을 신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성근 전 판사의 탄핵과 관련해 거짓말을 했다가 하루 만에 들통나 망신을 샀던 일은 판사들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 법원 내부에서조차 대법원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외부의 입장은 오죽할까.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37개 회원국 중에서 한국은 사법 시스템(judicial system)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가장 낮은 나라로 꼽혔다. 이 조사에서 말하는 사법시스템이 법원만을 가르키는 것은 아니지만, 현 대법원에 대한 신뢰도는 그때보다 나아지지 못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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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성 기자

2011년 입사해 사회부 법조팀, 증권부, 사회부 사건팀, 산업1부 자동차팀을 거쳐 현재는 정치부 국회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20년 제14회 한국조사보도상 수상 2024년 제 19회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 언론상 신문보도부문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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