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트고 재래시장이고 다 가격이 올라버리니까 시장도 갈 엄두가 안 나. 그냥 있는 대로 먹고사는 수밖에 없어."
월남전 참전용사 이모씨(86)는 국가유공자 모자를 고쳐 쓰며 이렇게 말했다.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연탄은행에서 열린 '설맞이 찾아가는 보훈, 따뜻한 한 끼' 행사에는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유공자들은 금빛 문양과 태극기가 새겨진 모자와 재킷을 입고 행사장에 모였다. 국민의례 순서에는 경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배식이 시작되자 안부를 물으며 식사를 이어갔다. 일부 참석자들은 "다채롭게 메뉴를 바꿔가며 식사를 만들어주기 쉽지 않은데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행사장 분위기와 달리 이들의 일상은 고물가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고령층이 대다수인 국가유공자들은 "안 오른 게 없다"며 생활고를 호소했다. 이들은 '연탄은행 배식소'에서 평일 점심을 해결하지만 배식이 없는 주말에는 버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참석자들은 국가에서 지급하는 참전용사 수당과 기초연금 등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연금 규모 등은 개인마다 편차가 있지만 6·25전쟁과 월남전에 참전한 65세 이상 유공자에게 매달 지급하는 참전명예수당은 월 49만원에 불과하다. 지자체가 추가로 일부 지급하고 있지만 금액이 많지 않다.
아내와 함께 40년째 후암동 다세대주택에 살고 있다는 이씨는 "주로 시장에서 식재료를 사는데 최근에는 계란부터 쌀, 채소 등 안오른 품목이 없어 부담이 크다"며 "적십자에서 배급받은 김장 김치를 유일한 반찬 삼아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농축수산물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6% 올랐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0%)를 상회하면서 물가 상승을 견인했다. 특히 생활물가를 대표하는 쌀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8.3%, 라면은 8.2% 올랐다.
또다른 월남전 참전용사 길모씨(80)도 "고물상을 운영하면서 겨우 반찬값을 벌고 있다"며 "아들이 일부 생활비를 보내주는데 손자들이 초등학생이 되면서 부담이 될까봐 사정이 괜찮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말했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길씨는 이날도 보호대를 착용하고 행사에 참석했다. 그는 병원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치료도 미루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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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식비에 식사량을 줄인 경우도 있었다. 6·25 전쟁 참전 용사의 미망인 이모씨(77)는 "물가가 말도 못 하게 올라 지난해 여름부터 식비를 절반으로 줄이고 붕어빵 같은 간식으로 식사를 대체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수입 고기도 사 먹곤 했는데 지금은 과일조차 사치로 느껴질 정도로 생활이 빠듯하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는 취약계층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을 비롯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도 참석했다. 주최 측은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들에게 한끼 식사를 대접하고 온열 방석, 귀마개 등 방한 용품을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