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김승영 사장, 야구단에게 투자란? "애정과 배려 정성으로 스타 키워내는 것"

"열심히 했는데 허탈합니다. 시원섭섭하다고나 해야 할까."
지난 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김승영 두산베어스 사장은 올해 시즌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털어놨다.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두산이 내보낸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광고 카피처럼 우승의 결실을 맺지 못한 아쉬움과 팬들에 대한 미안함이 녹아 있었다.
'2등은 기억하지 않는' 세상이다. 하지만 정규리그 순위 4위로 시작해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차례로 거친 뒤 '기적'을 이루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두산베어스에게 아직까지 많은 관심이 걷히지 않고 있다. '미러클 두산'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올해 시즌에서 극적인 장면을 많이 연출해 팬들에게 감동을 줬기 때문일 것이다.
김 사장은 두산의 힘을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야구도 기계가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하는 거라 사람을 어떻게 키우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산그룹이 내세우는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과 상통하는 대목이다.
-올해 격전을 치렀는데 소감을 말씀하신다면.
"열심히 했는데 허탈합니다. 시원섭섭하다고나 해야 할까. 응원해준 팬들과 그룹 임직원분들을 생각해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 많이 남습니다. 하지만 내년에 대한 희망을 주게 된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올해 한국 프로야구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 추신수 선수 등 때문에 관심이 아무래도 적었습니다. 그런데 플레이오프의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많은 야구 팬들의 눈이 집중됐는데요, 이걸 두산이 만든 것 같습니다.
"동감합니다. 사실 올해 야구의 스타트는 별로 안 좋았습니다. 관중 수는 전년도에 비해 좀 줄었고,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성적도 안 좋았죠. 또 전체 게임은 늘었지만 팀간 게임 수가 줄어들면서 게임 일정이 규칙적이지 않는 등 악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시즌이 진행되면서 열기가 달아올랐고, 하이라이트인 포스트시즌에서는 저희가 주인공이 됐던 것 같습니다. 프로야구 흥행 측면에서는 마무리를 잘 했다는 것에 자부심 느끼고 만족합니다. 우리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뛰어주고, 관중이나 팬이 다들 인정해주고 기대감을 가져줬다는 점에서 결말이 참 좋았습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2패뒤 3연승을 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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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패를 했을 때 직원에게 '2군 선수들 훈련하고 있는 일본에 가야겠다. 비행기표 빨리 끊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후에 팀이 선전을 해서 결국 2군 선수들이 훈련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일본은 못갔어요. (웃음)
저희 팀이 '미러클 두산'이라는 수식어 붙는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정적 순간에서 반전이나 드라마틱한 연출이 많이 이뤄졌습니다. 과거 경기를 볼 때도 그렇지만, 이번에는 특히 그런 '임팩트'가 많았습니다."
-그런 '미러클'의 힘은 어디서 오나요.
"전통이라고 해야 할까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도부터 전통이 쌓였습니다. 선배들이 이룩한 업적을 후배 선수들이 무의식적인 상황 속에서도 습득을 하는 거 같아요."
-구단에 그룹 문화도 녹아 있는 것 같은데요.
"정말로 그룹의 문화와 상통하죠.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룹 광고도 보면 '사람이 미래다'이고, 박용만 회장이 강조하는 게 사람, 인재입니다. 야구도 기계가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하는 거라 사람을 어떻게 키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스카우트나 자유계약선수(FA) 영입을 통해 단기적인 효과를 볼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지요.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은 좋은 선수를 발굴해서 애정과 배려, 정성으로 스타로 키워내는 것입니다. 우리 구단의 선수를 보면 거의 다 그렇게 자랐습니다. 일반인이나 다른 구단 팬이 보면 구단이 투자를 안 한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뭐가 진정한 투자인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신인선수를 발굴해 좋은 선수를 만드는 장기적인 투자를 선호하지, 단기 성적을 위해서 영입한다거나 하는 것은 지양합니다."
-한국 야구도 선수들 연봉 총액으로 투자 규모를 판단하지 않나요?
"그렇죠. '얼마나 비싼 선수 많이 사오나'에 관심이 집중돼 있습니다. '60억, 70억에 사 왔다'느니 '용병 선수 왕창 메이저리그에서 비싸게 사 왔다'는 걸 큰 투자라고 말하지요. 그런데 그런 시각은 변할 겁니다. 2군 연습장을 제대로 만든다거나, 전지훈련을 체계적으로 하는 부분도 투자입니다. 하다못해 우리는 지방 경기를 갈 때 선수들이 좀 더 좋은 호텔에서, 좋은 밥을 먹게 하는 게 투자라는 생각합니다."
-선수 발굴은 누가 하나요?
"누가 한다라기보다, 우리 구단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팀이 강팀이 되려면 단기적으로는 선수나 감독이 유능해야 하는데, 장기적으로 볼 때는 프론트(구단본부)가 강해야 강팀이 합니다.
다른 팀을 봐도 직원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한 팀이 강팀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현재 9개 구단을 보면 프론트가 약한 팀은 성적이 잘 안 나옵니다.
경험 없고 노하우 없는 프론트는 선수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예측을 하지 못합니다. 일이 터지면 그걸 해결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만 하죠. 그런데 경험 많고 강력한 프론트는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이 시기에 무슨 일이 미리 발생할 수 있다'며 사전 예방을 하게 되죠.
-김태룡 단장과 호흡은 어떤가요.
"아주 잘 맞죠. 자랑을 좀 하자면 9개 구단에서 사장과 단장의 관계가 제일 좋은 구단이 저희입니다. 다른 곳은 관계가 좋지 않은 곳이 많아요. 김 단장은 선수출신이기 때문에 제가 모르는 부분을 많이 보완해 줍니다. 김 단장은 선수들의 생리를 너무 잘 알아요. 저 친구(김 단장)를 통해 내가 간접적으로 경험을 많이 하죠."
-사장 취임 전에 7년간 단장을 역임했는데, 그 때와 지금이 많이 다른가요.
"한 경기 한 경기 볼 때마다 애착의 강도는 지금이 훨씬 크죠."

- 올해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나요?
"5월 8일, SK에 11대 1로 이기고 있다가 13대12로 역전패했을 때죠. 두산 팬들은 그 날을 '어버이날 참사'라고도 합니다. 그 후 고꾸라져서 7월 초에 6위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땐 진짜 암울했죠. '해내겠지'라는 신념은 있었는데…. 물론 되갚아주긴 했습니다. (9월12일 두산이 SK에 7대0으로 지고 있다 9대7로 역전승함.)"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은 LG의 팬들도 올해 기대가 컸을 텐데요
"시즌 시작 전에 전력분석을 할 때는 LG를 강팀으로 분류를 안 했어요. 그런데 게임을 하다보니까 강팀이 돼 있더라구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는데 이병규가 고참 역할을 잘 했고, 류제국이라는 좋은 피처가 뒷받침됐고, 감독의 리더십도 극대화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내년에는 더 잘 할 거예요. 게임을 내가 실제로는 안 하지만, 붙어보면 '저 팀 강해졌네. 말랑말랑 해졌네' 이걸 느낍니다."
- 삼성라이온즈가 3차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삼성의 독주 시대가 됐다는 말들이 있는데요.
"이번 한국시리즈를 보면 두산 팬이 아닌데 두산 응원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만큼 삼성이 독주를 그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도 같아요. 삼성은 그동안 오승환이 있어서 행복한 팀이었습니다. (오승환의 메이저리그 진출 등으로) 이제는 독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얻은 소득이 있다면?
"올해 포스트시즌 16경기를 치렀는데, 연장까지 하면 거의 18경기 수준이었어요. 정규시즌 한 경기와 포스트시즌 한 경기는 압박과 강도에서 차이가 큽니다. 그걸 통해 선수들의 야구가 확 늘었습니다. 신인들은 '타이트한' 포스트시즌을 통해 기량과 경기 운영능력이 성장했습니다. 꾸준히 4강에 들었던 팀들이 좋은 선수들을 많이 배출하는 것도, 큰 경기 경험을 통해 많이 배워서 그렇습니다."
- 올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아서 내년시즌에 차질이 있는 건 아닌가요.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선수들을 쉬게 하고, 관리를 잘 해야죠. 창피한 얘기지만 1995년에 우승하고 이듬해 꼴찌를 했어요. 올해 준우승을 했지만, 허탈감보다는 '내년에는 더 잘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전지훈련에 임해야죠.
제가 올해 준우승 뒤에 나간 신문 광고를 액자로 만들어 제 방과 단장 방, 사무실, 선수 라커, 코치 방 등에 수십개 붙여놓고 1년 동안 보자고 했어요. 무의식 중에라도 그걸 걸어놓으면 각오를 되새기지 않을까 해서지요."
- 내년 필승 카드로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역시 피처(투수)가 중요합니다. 좋은 용병을 선별해야하고, 컨디션이 저하된 친구들을 북돋아서 투수진을 탄탄하게 만들면 다른 것들은 기존 방식대로만 해도 될 것 같아요. 방망이 잘 치고 수비력도 좋아서 별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부상인데, 부상을 미연 막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게 필요합니다.
(용병 투수로) 니퍼트는 내년에도 같이 갈 테고, 핸킨스는 약간 고민이 됩니다. 타자는 외야자원으로 오른쪽 거포 타자, 타이론 우즈 같은 선수가 그립습니다."
-FA 선수 3명(손시헌, 최준석, 이종욱) 다 잡을 건가요.
"그렇게 했으면 좋은데 본인 생각과 다른 부분이 있는지 봐야죠. 다각적으로 검토할 부분입니다."
-FA 영입 계획은?
"어쭙잖은 FA 선수 데려올 때는 출혈이 너무 클까봐 걱정이죠. 좋은 선수가 많으면 내주기도 아깝고. 최적의 FA가 아닌 이상 출혈이 너무 많아요. 군대에 가 있는 선수들 중에 기대되는 선수들도 있고."
- 메이저리그에 비해 우리나라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데 보강할 방법이 있다면?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야구팀 많이 만들어서 저변을 확대해야 합니다. 미국처럼 클럽야구가 활성화돼야죠. 또 하나는 프로에 못 가더라도 사회에서 이들을 흡수할 수 있는 구조가 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 팬서비스도 중요한 거 같은데요.
"아직까지 구조적으로 그 부분이 잘 돼있지는 않습니다. 자기 구장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힘들죠. 중계권료도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터무니없이 싸기 때문에 바뀌어야 합니다. 야구구장도 지금 잠실구장 수용인원이 2만7000명인데 4만명 정도로 늘려야죠.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때 한경기 입장수익이 9억~10억원인데, 4만명이 되면 못해도 15억, 많으면 20억원원 정도 수익이 가능합니다. 홈구장을 갖고 광고나 식음료판매 등으로 수익을 올리면 수지가 그리 악화되진 않을 거예요.
돔구장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 야구 실무자로서 돔구장도 필요하지만 일단 사이즈로 볼 때 4만석 정도 들어가는 야구장 하나는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