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FC 수비수 이기혁(26)에게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은 꿈의 종착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큰 목표를 향한 출발점이 됐다.
이기혁은 4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6 16라운드 전북 현대와 원정경기에서 2-1로 승리한 뒤 북중미 월드컵을 돌아봤다.
지난 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이기혁은 곧바로 경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휴식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정경호 강원 감독은 "이기혁이 자처한 일"이라고 기특해했다. 강원이 초반부터 리드를 잡으며 승리하면서 이기혁은 무리하게 출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료들과 함께하며 벤치에서 뜨거운 응원을 보내는 등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정 감독은 강원의 공식 '분위기 메이커'인 이기혁이 동행한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고 든든해했다.
이기혁은 "제가 자처한 부분도 있고, 정 감독님도 저를 필요로 하셔서 부르기도 했다. 제가 와서 팀이 승리할 수 있다면 바로 합류해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역할을 하기 위해 따라왔다. 비록 경기에 뛰지는 않았지만 팀에 기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까다로운 전북 원정 승리 이후 이기혁은 정 감독과 농담도 주고받았다. 그는 "출전하지 않아서 정 감독님께 '이럴 거면 저도 쉬게 해달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는데, 정 감독님도 웃으면서 '분위기 메이커'라고 하시더라. 저도 마음이 좋았고, 분위기 전환도 한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기혁에게 북중미 월드컵은 특별한 무대였다. 대회 전까지만 해도 그의 A매치 경험은 단 1경기에 불과했다. 월드컵 출전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기혁은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최종 명단에 깜짝 포함됐다. 더 나아가 한국 대표팀 주전 자리까지 꿰찼다. 이기혁은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해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한범(미트윌란)과 호흡을 맞췄다.
이기혁은 세계 무대를 통해 많은 것을 안고 돌아왔다. 그는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상대하고 오니까 부담감도 떨쳐냈다"며 "K리그에도 훌륭한 선수들이 많지만, 월드컵이라는 무대는 압박감이 더 심하고 상대를 막는 데도 힘겨운 부분이 있었다.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힘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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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감독도 "이번 월드컵 최대 수혜자는 이기혁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성장한 케이스"라며 "사실 막차를 타고 월드컵에 출전해 3경기를 선발로 뛰는 게 쉽지 않다. 저도 월드컵에 다녀왔지만 경기에 뛰지 못했다. 그런데 이기혁이 막차를 타고 3경기를 뛰었다는 건 엄청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기혁은 북중미 월드컵 내내 '괴물 수비수' 김민재에게 특급 과외를 받기도 했다.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김민재에게 물어보는 열의를 보였고, 김민재 역시 후배를 위해 많은 도움을 건넸다.
이기혁은 "민재 형과 뛰어보니 확실히 다르더라. 민재 형을 보면서 저는 아직 너무 부족한 수비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재 형의 장점은 다 배우려고 많이 노력했다"며 "경기가 끝나면 민재 형에게 따로 경기 장면을 보내며 많은 걸 물어봤다. 민재 형도 피드백을 정말 잘해주셔서 이번 월드컵은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된 대회였다. 한 발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물론 조별리그 탈락은 아쉬운 성적표였다. 이기혁은 "이번 북중미 월드컵을 통해 K리그에 대한 인식을 팬들에게 조금이나마 좋게 남긴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팀으로 나간 월드컵 무대였기 때문에 더 높이 올라갔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조별리그 3경기만 치르고 돌아온 것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기혁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축구 통계 매체 풋몹 기준, 이기혁은 조별리그 1차전 체코전과 3차전 남아공전에서 한국 수비수 중 가장 높은 평점을 받았다. 남아공전의 경우 한국 선발 11명 중 유일하게 평점 7점대를 기록했다. 당시 이기혁의 평점은 7.5점이었다. 체코전 뒤에는 미국 매체 로토와이어가 "이기혁은 김민재, 이한범과 함께 스리백으로 나섰는데, 그중 가장 덜 알려진 수비수였다"면서도 "그럼에도 자신의 몫 이상을 해냈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월드컵을 통해 이기혁의 꿈도 더 커졌다. 그는 "유럽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보여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욕심이 많이 생겼다"며 "잘하면 해외 무대에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목표도 세워놓고 남은 경기와 시즌을 잘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아시안컵도 있고,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시안게임이라는 무대도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욕심이 많이 생겼다"며 "남은 시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뤄낼 수 있도록 개인적인 목표를 가지고, 발전을 위한 운동도 많이 하면서 준비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제 이기혁은 다시 강원에 집중한다. 강원은 전북 원정 승리로 3연승과 6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순위도 2위까지 끌어올리며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기혁은 "더운 날씨에 열심히 뛴다는 것이 쉽지 않다. 벤치에서 경기를 봤는데, 동료들이 승리를 위해 너무 열심히 뛰는 것 같아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저도 경기에 뛴다면 다른 선수들의 에너지에 지치지 않게 뒤에서 파이팅도 많이 넣어주고, 한 발 더 뛰면서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팀 분위기가 너무 좋다.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게 선수들과 많이 소통하고, 정 감독님과도 많이 얘기하면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달려가겠다"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