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현금의 지배(THE CASH NEXUS)
[글로벌 베스트셀러]

현금의 지배(THE CASH NEXUS)
니알 퍼거슨
김영사 2002
▶저자의 말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역사를 규정하는 힘은 비합리적인 폭력이었다. 현대의 경제적 생활에 필요한 제도들은 돈보다는 정치적 사건들, 무엇보다도 전쟁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세계적 지도력을 갖춘 패권국가가 없는 상황에서 경제적 세계화가 진행되도록 허용하는 것은 위험스러우며 언젠가는 어리석은 책임회피로 귀결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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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알 퍼거슨의 '현금의 지배'는 불온의 혐의를 받는 책이다. 적어도 민주주의를 신뢰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상식을 향해 저자는 전복적인 논지를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첫째, 현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핵심적 제도들은 경제적 동기의 결과물이 아니라 전쟁의 산물이라고 규정한다. 둘째,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필연의 관계가 없으며 과도한 민주주의는 오히려 경제발전을 저해한다고 경고한다. 셋째, 미국은 군비지출 확대를 통한 제국주의적 정책을 취하지 않는 한 국제사회의 안정을 도모할 수 없다고 권고한다.
다분히 논쟁적인 문제제기들이다. 그러나 저자의 도발적인 명제들을 일소에 부치기에는 책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현직 옥스퍼드대 교수가 1583개의 각주를 동원해 3부 14장에 걸쳐 논구한 결과물이라는 묵직함에다 문학과 역사, 경제학적 통계와 정치적 맥락을 넘나드는 비상한 통찰과 혜안이 곳곳에 스며있어 맞받아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저자의 논지를 좀 더 풀어보면 이렇다. 현대국가의 골격은 ‘권력의 사각형’(Square of Power)으로 짜여져 있다. 세무관료와 의회, 국가채무, 중앙은행이 4각을 이룬다. 그런데 이 사각의 축은 전쟁 자금조달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들로 이것이 경제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세무관료의 필요성이 공교육제도를 발전시켰고 대규모 국채발행으로 민간 자본시장이 육성되었으며 국채 관리의 임무를 맡았던 중앙은행의 등장으로 신용제도의 안정적인 발전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또한 의회제도를 통해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는 등 정치적 성숙이 뒤따르며 이들 제도들은 서구 산업혁명의 디딤돌이 되었다고 저자는 조망한다.
저자는 결국 경제적 요인이 정치와 사회구조를 규정한다는 ‘결정론’을 거부한다. 대신 저자는 성, 폭력, 권력 등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다양한 충동들이 경제적 동기보다 더 강력하고 지배적인 요인이라고 파악한다. 그리이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가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라고 말했듯 혼돈의 극치인 전쟁을 통해 근대국가가 성립하고 결과적으로 경제가 번영했다는 역사적인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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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치열한 시선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와의 관계로까지 전이된다. 저자는 경제성장이 민주주의를 가져온다는 필연성이 없으며 또한 민주화가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확고한 연결고리가 없다고 파고든다. 대신 민주화는 초기 단계에서는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만 민주화가 성숙되면 사회보장제도나 소득재분배 문제로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혐의를 둔다. 저자는 나아가 민주주의가 다른 모든 제도들보다 반드시 우월하다고 볼 근거도 없다고 부언한다. 이 점에서 저자는 “자본주의를 핵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역사발전의 최종단계”라고 선언했던 프란시스 후쿠야먀와 거리를 둔다.
로마제국 이래 가장 강력한 국가인 미국의 역할에 이르면 저자의 논지는 더욱 날카로워 진다. 저자는 20세기의 대영제국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억제하는데 실패한 것은 군비 지출을 줄였기 때문이라며 미국도 고립주의 노선과 철수전략을 선호할 경우 테러리스트나 불량국가의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미국은 군비를 줄일 게 아니라 군비확장을 통해 국제사회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과도한 군비지출(overstretch)은 미국의 몰락을 초래한다”는 폴 케네디와 대척점에 선다.
카알라일은 “역사는 존재의 끝없는 혼란”이라고 했다. 이 책 또한 단순한 결정론을 부인하고 인간의 다양한 동인들을 탐색하며 경제와 역사를 새롭게 보는 안목을 펼쳐 보인다. 그러나 책은 자금(money)을 경제(economy)와 등치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고 제국주의적 헤게모니 확보 전략으로는 글로벌화가 심화되고 있는 지구촌의 다층적이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수렴하기 난망하다는 비판도 사고 있다. 과연 전쟁은 문명의 모태인가.
▶촌평
“이 책은 현대 세계의 경제, 정치, 금융 역사를 능숙한 솜씨로 종합한 걸작이다. 퍼거슨 교수는 화폐, 채권시장, 주식시장, 과세 및 국력의 상호관계, 그리고 전쟁의 인과관계를 놀라운 통찰력을 바탕으로 그려내고 있다.”-리차드 실리아, 뉴욕대학 스턴 경영대학원 교수.
“저자는 72년간이나 사회주의 체제의 지지철학이었던 경제결정론을 부인하면서도 그 아류격인 돈, 경제 지배인식을 제시했다. 이 같은 역사해석은 아직 새로운 사관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으나 충분히 검증해 볼 만한 패러다임이다.”-전철환 한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