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국이 맛본 자유

[기자수첩] 미국이 맛본 자유

이웅 기자
2003.08.19 12:42

[기자수첩] 미국이 맛본 자유

미국의 정전 사태가 조기에 수습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출근 인파가 몰리는 월요일(18일) 아침이 고비라지만, 현재로서는 우려하듯 사태가 재발할 위험은 없어 보인다. 사태가 수습되자 관심은 경제적 파장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전문가들마다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 경제조사기관인 브래틀 그룹은 이번 정전 사태로 인한 피해액이 최대 60억달러(약 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연간 10조달러(1경1800조원)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미국 경제로서는 큰 문제가 아니다. 영향이 0.1%도 안되니 미미하다. 겨울철 폭설 한번 내린 걸로 치자는 '명쾌한' 해석이 내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조기 수습에 대한 자신감일까. 현지에서는 사건 당시 놀랄만큼 침착했던 시민들의 반응과 탁월한 당국의 위기관리 능력을 치켜세우는 미담이 쏟아지고 있다. 맨해튼의 식당가에서는 불통된 냉장고에서 꺼낸 재료들로 공짜 바베큐 파티가 벌어지고, 한편에선 10개월 뒤에 올 이른바 '블랙아웃(Blackout) 베이비붐'까지 논의됐다니, 세계 최강 미국은 미국이다.

하지만 뭐로 보나 세계 최고의 '시스템'을 자랑해온 미국으로서는 오지의 후진국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로 세계의 근심을 샀으니, 체면을 구겼다. 특히 후견인을 자처하고 있는 이라크인들이 보내는 냉소어린 '충고'는 미국인들로서는 그냥 받아넘기기에 뼈아픈 구석이 많다.

지난 3월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이후 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이라크인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미국도 이라크처럼 '자유'와 '정전(停電)'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고 한다. '이라크의 자유(Iraqi Freedom)'를 기치로 내걸로 전쟁을 일으킨 미국이 이라크에 안겨준 것은 혹독한 '정전(停戰)'의 고통뿐임을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실제 미국의 한 시민단체는 "수백만명의 이라크인들이 수개월간 섭씨 5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전력, 물, 의료지원 없이 지내고 있는데, 미국인들은 고작 이틀간 30도의 더위에 호들갑"이라고 일갈했다. 테러가 아닌 걸 다행스러워하기에 앞서 지난 주말 미국이 맛본 짧았던 '자유'의 의미를 새겨 봐야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