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불법행위에 '정책적 고려'(?)
"불법에 대해선 원칙으로 대응하자"는 외침은 노사분규에만 적용될 뿐 재벌이나 정부에겐 남의 얘기인 듯 하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고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지만 법을 어긴 재벌과 이를 주도한 감독당국에 대해선 '정책적 고려'라는 명분하에 '면죄부'가 주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6일 기아자동차와 INI스틸이 현대카드 증자에 나서 1000억원이 넘는 지분을 인수한 행위를 부당지원으로 규정했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시장안정을 위한 불가피성이 인정된다"며 과징금 부과 등의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정치적 배려'로 형식적 죄값을 치룬 정치인들을 보는 것만도 지겨운 마당에 이젠 '경제검찰'마저 '원칙'보다 '정책적 고려'라는 모호한 기준을 내건 것이다.일각에선 "부실 계열사가 망가지면 시장에 혼란이 오기 때문에 우량 계열사를 통해 지원을 한 것인만큼 다른 부당지원에 대해서도 정책적 고려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이같은 웃음거리는 정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경쟁당국이 '불법'으로 규정한 행위는 금융감독당국이 재벌더러 카드사 증자에 나서라고 '압력성 권유'를 한 데서부터 비롯됐다. 원인 제공자(금융감독당국)에 책임을 묻지 않는 상황에서 행위자(재벌)에게 제재를 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것. 특히나 시장경제체제에서 가장 강력한 불공정행위인 '관치'에 대해 경쟁당국이 일언반구조차 하지 못한 것은 민간과 시장으로부터 그 위상과 신뢰성을 의심케 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강철규 공정위원장은 취임이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시장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을 것이고 불공정행위를 조장하는 정부의 행정지도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시장 질서 확립과 정부 개입 축소를 강조해왔다. 허나 강 위원장의 서슬퍼랬던 칼날도 '정책적 고려'에 밀려 슬그머니 칼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