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동전교환 피하는 은행
"조그만 여자 아이가 뒷굼치를 올려 은행 창구에 빨간 돼지저금통을 내민다. 엄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옆에서 지켜보고 있고 창구 여직원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돼지저금통을 두손으로 받는다."
저축을 장려하는 포스터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지금은 현실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이돼 버렸다. 고객이 직접 동전을 500원, 100원, 10원짜리별로 분류해서 은행 직원에게 바꿔 달라고 하는 것도 미안(?)한 판에 돼지저금통을 통째로 내밀다니. 언감생심이다.
아마 외환위기 이후부터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은행에서 동전을 지폐로 교환한다는 것은 이처럼 너무나 눈치보이는 일이 돼 버렸다. 동전을 교환해 주던 수납창구도 은행 지점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나마 은행 직원의 못마땅한 눈초리에 미안한 표정 지어주고 그 대가로 교환할 수만 있어도 감사한 일이다. 지난해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 동전 교환을 기피하는 은행에 대해 감독을 강화키로 했지만 실제 창구에서 고객들이 느끼는 싸늘함은 여전하다.
이러다 보니 사무실과 가정의 책상 서랍에는 동전이 수북히 쌓여가고 있다. 골프연습장에서 스윙 연습을 위해 골프공 5cm 앞에 10원짜리를 놓고 함께 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동전이 지폐로 교환돼 환수되지 않으면 한국은행은 동전을 계속 찍어낼 수밖에 없다. 주화 수요는 계속 늘어가기 때문이다. 자판기 숫자가 크게 늘어났고 대형 슈퍼마켓이나 할인매장, 지하철 등에서는 대량의 주화를 소비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주화 순발행(발행-환수) 규모는 1990년~1997년까지 28억원에 불과했지만 98년~2003년 2/4분기까지는 무려 187억원으로 증가했다.
몇년전 우리은행이 동전교환수수료를 신설하려 했다가 여론에 밀려 포기한 적이 있다. 우리 국민들은 은행이 동전을 교환해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동전교환에 불편함을 겪고 있고 은행들의 기피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은행만 욕할 수도 없다. 수익성 지상주의 시대에 돈 안되는 서비스를 계속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동전의 통용을 제한하고 있고 은행에서 교환할때는 수수료를 내도록 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국민의 정서와 국민의 편의 사이에 타협이 필요한 시점이 된게 아닐까. 언제까지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