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포인트]"살얼음판을 걷는 느낌"
12월 첫째날 종합지수는 전날 급등에 이어 소폭 조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증시 내부는 겉으로 드러난 지수 낙폭에 비해 다소 더 부정적으로 보인다. 차익매수로 인해 약보합 수준에 그치고 있을 뿐 뚜렷한 매수 주체는 없다.
전날 증시는 막판 상승폭을 확대하며 12.56포인트, 1.46% 큰 폭으로 뛰어올라 878.06으로 마감했다. 이 역시 투신과 증권 중심으로 선물 매수가 늘어나며 차익매수가 늘어났기 때문이지 뚜렷한 매수 주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결국 최근 증시는 프로그램 매매, 특히 차익매매에 따른 등락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종합지수가 850 위에서 버티는 것도 차익매수 덕분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간 외국인은 꾸준히 조금씩이지만 한국 주식을 내다팔고 있다.
류용석 현대증권 연구위원은 "2001년부터 올해까지 10~11월에는 연말 배당 재료와 내년 증시에 대한 기대감으로 프로그램 매수세가 대거 유입되는 경향이 있었다"며 "11월 이후 증시 강세도 이러한 추세의 연장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류 연구위원은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추이를 보면 프로그램 매수는 12월 초중반까지 계속 유입되다가 만기일 이후엔 프로그램 매수보다는 매도 압력이 강해졌다"고 지적했다. 만기일 이후 유입됐던 프로그램 매수가 매도로 청산돼 나갈 수 있다는 의견이다.
현재 시장을 움직이는 축은 재료로는 환율이지만 결국엔 수급, 더 좁게 말하면 프로그램 매매다. 일단은 다음주 만기일까지 10여일간 수급은 다소 긍정적이지만 그 이후엔 프로그램 매수로 버텨온 장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펀드매니저들도 조금씩 조심하자는 의견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A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증시에 대한 기대는 참 높은 것 같지만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들의 주가가 빠지는 상황에서 다른 대체주가 오르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사실 개인적으로 보면 이런 블루칩의 주가가 부진한 가운데 한국전력이나 한국가스공사 등 이등주(Second-Tier)의 강세가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라고 본다"며 "시장이 이런 이등주, 개별 종목의 강세를 이끌고 있으므로 시장이 원하는대로 매매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등주, 중소형주 강세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확신을 갖기 어려우며 현재 870선인데 (프로그램 매수로 버텨온 만큼) 무너지면 700 후반까지 대폭 밀릴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주식 투자를 고려한다면 조정 때 분할 매수, 적립식펀드 투자 등 신중한 접근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개인적으로 볼 때 조정을 좀 받고 펀더멘털이 개선되면서 증시가 올라가는게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치투자를 하는 B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도 "지금 시장이 썩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우량한 중소형주들은 너무 많이 올라 매수하고 싶은 가격선 위로 올라섰고 전기전자(IT)를 비롯한 대형주는 주가가 매수할만한 가격 밑에 있어 밸류에이션이 매력적인데 모멘텀이 너무 없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는 고백이다. 이 매니저는 "개별 종목별로 보면 저평가됐다, 정말 싸다 싶은 종목을 찾기 힘들고 IT는 싸보이는데 업황 부진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부담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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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절상에 대해서도 국내 경제와 증시에 큰 타격이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지만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선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 금융기관 펀드매니저는 "원/달러 환율 하락 때문에 증시에 대해 단기적으로 다소 보수적이 됐다"고 말했다.
위에 소개한 A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도 "IMF 위기는 원화 가치가 급격히 절하돼 문제였지만 지금은 국가 경쟁력 이상으로 원화 가치가 급격하게 절상될 위험이 있어 문제"라며 "또 다른 외환위기 상황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원/달러 환율 하락에 대해 인플레이션 부담 감소, 내수 회복 기대, 외국인 자금이 원화 절상을 기대하고 급격히 유출되지 않을 것이란 분석 등 긍정적인 의견도 많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구도상 국가 경쟁력 훼손이라는 악재를 만만히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B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역시 "환율 문제에 대해 크게 우려할만한 것은 없다는 의견이 많지만 원/달러 환율 하락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올 4분기 기업들의 실적이 나와야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말 글로벌 경쟁력 확보로 대기업들이 원화 가치 절상을 감내할 수 있는지, 원화 절상으로 인한 부담을 가격에 어느 정도 반영할 수 있는지는 지켜봐야할 문제"라는 지적.
미국과 중국의 정책적 입장도 중요하다. B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미국이 달러화 약세를 통해 그간 풀어놓았던 자금을 환수하려는 것은 아닌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달러화 하락은 미국 국채 수요 감소, 미국 국채 수익률 상승, 금리 상승으로 인한 유동성 축소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그간 글로벌 증시 랠리의 가장 강력한 연료였던 국제 유동성이 축소된다는 의미가 있다.
현대증권 류 연구위원은 "달러화가 약세를 보일 경우 장기 금리가 올라가면서 모기지론 금리 등이 상승, 미국 소비자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급격한 달러화 하락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달러화 약세로 인한 국제 유동성 변화는 가능하다. 삼성증권도 내년 전망을 통해 "내년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지난 몇 년간 부풀려진 호황을 잘 관리해야할 시기"라고 지적, 미국과 중국의 긴축 정책이 계속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결론적으로 기업지배구조나 이익의 변동성 축소, 장기 투자 확산 등 시장의 질 개선으로 인한 장기적인 주식시장 전망은 낙관적이지만 단기적으로는 프로그램 매매로 심하게 흔들리는 취약한 수급, 개별 종목별 큰 폭의 주가 상승 등을 감안할 때 조심해야할 때로 보인다. 게다가 미국 증시도 전날 하락하는 등 최근 강세가 마무리되면서 쉬는 분위기라 단기적으로는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으로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