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 정의하는 투기란 재화나 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른 이득 곧 자본이득을 취하려는 경제적인 선택을 말한다. 다시 말해 어떤 재화나 자산의 가격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 그 차익을 챙기는 행위를 투기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이 정의를 다시 한번 읽어 보시라. 이 정의에 무슨 가치판단이 있으며 도덕적 비난의 여지가 있는가? 그리고 이보다 더 합리적인 경제 행위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투기의 대상이 분명해지면 우리의 의견은 충돌하고 그에 따라 좌파와 우파가 갈린다. 경제학적인 정의에서 볼 때 주식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 이득을 챙기는 것은 투기이다. 쌀이 싼 가을 수확기에 사서 비싼 봄에 파는 것도 투기의 일종이다. 집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도 또한 투기이다. 이들 세 가지 예는 결국 몰가치한 학문의 관점에서 보면 같은 것이나 거래되는 대상에 대한 가치판단이 개입하면 전혀 다르다.
가격조작을 하지 않은 다음에야 주식투자로 부자가 된 사람들을 부도덕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쌀을 매점 매석한다던가 아니면 부동산에 투기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많은 사람들이 부도덕하다고 비난한다. 먹고 자는 것들에 투기하여 비용을 높여 놓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심정적으로 이와 같은 비난에 일정부분 동조하며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학풍을 가진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배운 데로 살지 않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가 현대적인 형태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가 말한 바와 같이 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초기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었던 천민적 요소를 많은 부분 제거하고 인간의 모습을 경제적인 선택에 고려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구의 산업혁명을 전후하여 형성되기 시작한 근대적인 자본주의는 그야말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착취를 근간으로 한 체제로 당시의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와 여성 그리고 청소년이 겪었던 비참한 노동현실은 많은 기록이 증언하고 있는 것으로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누구도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지금 우리의 경제체제는 이와는 크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숙식의 문제는 우리 정도의 발전을 이룬 현대경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공공의 문제이다.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던가 노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현대적인 체제로서의 우리의 체제가 잘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불우한 계층에 대한 보다 많은 배려는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체제를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와 경제현실은 냉혹한 것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의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며 그와 같은 본성을 무시한 경제체제나 정책 그리고 신념은 성공할 수가 없다는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경제 현실에 대한 모든 구성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고 하여도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과 창의성을 자극할 수 없는 체제로는 절대로 선진 경제를 달성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와 같은 창의성에는 투기하는 사람들의 창의성도 포함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투기란 그 대상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경제 현실에 대하여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미래의 경제 현실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제현상이다. 지난주 우리는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정책 당국자들의 잇따른 경고를 들었다. 그와 같은 경고에는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 등 참여정부의 주요 경제당국자들이 모두 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청와대 정책실장은 강남의 부동산 가격이 왜 붕괴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으며 투기를 부추기는 조직적인 세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상에 어느 나라에서 경제정책의 핵심들이 거품의 붕괴를 소리 높여 외칠 수 있다는 말인가? 거품을 키우는 것도 문제지만 거품이 갑작스럽게 붕괴되었을 때 나타나는 고통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지금의 거품이 문제라면 참여정부는 지난 삼 년 동안 무엇을 한 것인가? 하루가 다르게 강력해진 투기 억제책을 내어 놓은 다음에 이제는 왜 시장이 자기들을 따라주지 않으며 거품이 곧 붕괴할 것을 애 모르느냐고 시장을 향해 헛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남은 이년이 참으로 걱정된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참여정부의 투기 억제책이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투기하는 사람들은 악당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은 무시되어 마땅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책이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입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당국자들이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또 그들의 입장에서 미래에 대하여 예측하여 보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정책의 효과를 과신하는 것은 실패를 전제하는 것이다. 투기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당국자들은 왜 자기들의 정책이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바꾸지 못하고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정책 당국자들의 형편없는 헛소리와 현실인식을 접하면서 살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