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의 헐값 매각 의혹을 당국이 조사하고 있다. 외환은행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외환위기 당시의 긴박함과 그 이후 우리 경제의 전개를 보면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고 그저 평범한 교훈을 얻은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업과 가계부채의 형태로 평범하고 약한 국민 계층만 강제적인 책임을 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정책 담당자들에 대한 사법적 판단도 있었지만 결론은 정책적 판단을 법의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불행한 경제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연하게도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었다고 하여 처벌을 받는다고 하면 이는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먼저 하나의 큰 경제적 사건은 한 순간의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건이 발생하는 시점에 경제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 그와 같은 사건에 대한 책임을 함의하지 않을 개연성이 다분하다. 그리고 경제정책 또한 인간의 일이기 때문에 정책결정의 시점에서 완벽하게 모든 결과를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제정책의 결정과 실행에 있어 이와 같은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책당국자가 최선이라고 믿는 정책적 선택을 하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는 사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적어도 양심의 영역에서는 책임져야 할 사안이다.
그와 같은 선택은 적어도 두 가지 경우에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부패한 관료가 사리를 추구하는 경우에 일어날 수 있을 것이고, 다음으로는 입신양명을 위해 임명권자의 비위를 맞추고자 할 때 일어날 수 있다. 여기서 부패의 경우는 법의 잣대로 심판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오히려 단순하다. 그러나 임명권자의 잘못된 판단을 지지하기 위해 최선보다는 차선을 택하는 경우에는 법에 의해 벌을 주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와 같은 판단의 도덕성에 대하여 마저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지도자의 과묵함이 덕목이 되는 이유가 있다. 임명권자가 어떤 사안에 대하여 지나치게 강한 입장을 피력하기 시작하면 자리 보존과 입신양명을 위하여 그것을 암묵적인 지침으로 삼는 관료들은 많은 경우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최선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임명권자를 만족시키는 차선이나 차차선의 선택을 하게 된다.
외환은행 매각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당시의 분위기는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권력 핵심으로부터의 암묵적인 지상명령이었다. 따라서 거래 상대의 적합성이나 후일 국가 경제가 부담하여야 할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은행을 매각한 것은 상기한 관료들의 특성으로 볼 때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한 불법성이 있다면 반드시 규명되고 처벌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발전적인 미래를 위하여 보다 염려해야 하는 것은 그와 같은 실수가 반복하여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정책적 판단을 왜곡하지 않을 지도자나 경제를 잘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정책적 판단을 전문가에게 위임할 것으로 기대되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현대와 같은 무한 경쟁의 시대에 우리의 생존을 위해 지역감정이나 좌우의 이념, 과다한 정치적 구호는 들녘의 말똥보다 못하다.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이 멸시받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실용주의와 왜곡되지 않은 의사결정 제도를 실현해 선진 대한민국을 이루는 것뿐이다.
외환은행 매각의혹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우리 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해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모두 한 발짝 물러서서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