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을 돌이켜 볼 때 주택시장이 가장 안정되었던 때가 1995년 전후라고 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주택가격은 안정세를 보였고, 미분양이 줄어들면서 주택건설도 정상 수준에 달하였다. 주택시장의 상황이 1995년과 유사하다면, 주택부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1995년 말을 기준으로 2005년 말까지의 10년간, 전국의 주택 매매가격은 30% 올랐으며, 전세가격은 41% 올랐다. 그런데 같은 기간 중 물가는 42% 올랐고, 근로자 가구 소득은 64% 증가하여, 물가에 비해서나 소득에 비해서 매매든 전세든 주택가격이 사실상 떨어졌다. 이 현상은 서울 강북, 광역시 등 강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공통된다. 주택가격이 경제위기 기간 중 큰 폭으로 떨어지고 2001년 이후 상승하였으므로 최근 5년간의 상승율은 비교적 높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정부는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서울 강남지역에서도 전세가격은 물가상승을 따라갔을 뿐, 소득에 비해 증가율이 낮았다. 결국 저소득층의 주거가 불안해졌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80년대 말 모든 지역의 모든 주택가격이 올라 많은 저소득층 가족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아야 했던 비극적인 상황의 재연은 없었다. 80년대 말 주택문제의 핵심이 저소득층 주거 불안이었던데 비해 최근의 주택문제는 성격이 다르다.
정부가 강남 집 값을 잡으려고 나서고,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동조했던 배경에는 중산층 젊은 가장들의 좌절이 있다. 성실하게 일하는 젊은 부부들 중 많은 수가 아이들이 크면 가진 집을 팔고 강남이나 이에 비견할 지역으로 이사간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강남 주택가격이 현격히 빨리 오르면서 이 꿈을 이룰 길이 요원해졌고, 세금이든 규제든 강남 주택가격을 잡으라는 여론이 커졌다. 모든 지역의 집 값이 비슷한 정도로 올라서 서민들이 정말로 죽어날 정도였다면 정부 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차라리 낮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강남 보다는 여타지역의 집 값을 더 떨어뜨렸고, 모든 주택소유자의 세금부담이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5.31 지방선거 결과가 정부 정책을 지지하던 사람들의 환멸감을 표출하였다. 서울 강남지역처럼 우리 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 값을 내리겠다거나, 존재하지 않은 거품과 전쟁을 벌인다거나, 시장 수급을 애써 외면하는 등의 행태에 대해 반성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다.
좋은 주거여건을 누리고 싶은 중산층의 좌절에 대해 어떤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대책의 대전제는 잘 사는 동네의 상위 계층에서 빼앗아서 나머지 사람들이 나누는 접근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인식이다. 주택수요자의 희망과 능력을 면밀히 파악하고 이들이 원하는 주거여건과 주택을 공급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정부는 국민 주거복지 향상이나 거시금융 시스템 안정의 측면에서 강남 주택가격 상승이 우려할 문제가 아니라는 선언을 한다. 부자들이 얼마에 고급 주택을 사고파는가는 흥미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정책적으로 억제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시장이 원하는 양질의 중대형 아파트 공급이 획기적으로 늘도록 정책을 개편한다. 강남의 좁은 땅에 모두를 수용할 수 없다면, 강남의 주거환경을 다른 곳에 가져가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강남 재건축단지가 일차적인 관심사이지만, 기존 시가지에서도 대규모 초고층 주거단지 후보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김포지역 신도시들을 묶어 규모를 확대함으로써 여의도, 시청까지 20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급행전철을 비롯한 각종 기반시설을 완비한다. 기존 공교육체계와 획기적으로 차별화된 양질의 교육여건도 필수적이다. 강남을 능가하는 주거 대안을 여러 곳에 제시하는 것이다.
중산층 30~40대 가장들을 위해서는 일정한 기간, 예컨대 7~10년 안에 적어도 세 번의 주택구입 기회를 갖도록 약속하는 프로그램을 발표한다. 도심으로의 출퇴근 거리, 주택 사양 및 기타 주거환경, 그리고 가격 등의 조합으로 몇 가지 표준을 정하고 주택 구입자금 적립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가입자의 수와 희망이 집계 되는대로, 이들의 주택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강력한 택지공급 수단을 도입하고 주택공급 시에는 장기대출을 지원한다. 물론, 주택을 구입할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기존의 국민임대주택 등 공공임대 주택을 건설을 차질없이 추진한다.”
이처럼 정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해서 자가든 임대주택이든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개각이 임박하였다고 하는데, 정상적인 마인드를 가진 정책담당자들이 주택정책을 맡게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