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건설노조 포스코 본사 불법점거 현장을 가다
"혹시 담배 있으면 하나만…"
27살이라고 했다. 9일 동안 변변히 먹은게 없단다. 초기엔 김밥 등이라도 먹을 수 있었지만 엊그제부터는 초코파이가 전부였다고 했다. 진부해진 싸움에 미련을 버리고 동료와 내려올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일부 지도부는 오전 중 이미 건물을 빠져나갔다. 내려오는 통로는 강경하게 버티는 소대장 등이 막고 있어 목숨을 걸고 건물배관 파이프를 탔다. 얼굴에는 보일러실 검댕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경찰조사를 받는 중엔 배고픈 것도 사라지고 담배나 한대 피웠으면 하는 바람만 남았다고 한다. 한동안 씻지 못해 피부는 거무스레하게 변했다. 농성에 참여하면 정식직원으로 채용될 수도 있다는 집행부의 선동에 휩쓸렸던 결과는 참담하기만 했다.
20일 경북 포스코 본관에서 만난 문모(27)씨는 "처음 농성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사태가 이 정도로 커질 줄을 몰랐다"고 고백했다. 함께 내려온 정모(26)씨도 "(농성장에서) 일찍 내려오고 싶었지만 지도부가 출구를 막고있어 쉽게 행동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을 조사 중이던 진윤식 포항남부경찰서 지능1팀 반장은 "자발적으로 내려오는 노조원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들은 대부분 차후 조사를 서약 받고 귀가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5일 공권력이 투입된 이후 이날까지 농성장을 빠져나온 노조원은 900여명에 달한다. 이탈하는 노조원들은 대부분 파업시위에 단순 가담한 이들이다. 이날만도 30분여동안 십 수명의 이탈 노조원이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조사를 받고 귀가하던 박모(53)씨는 6층에서 9일간 머물렀다고 말했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농성인원은 지도부에 의해 분회별로 나뉘었다. 농성을 이끄는 이들은 노조원을 소대별로 나누고 통제했다. 1소대 당 소대장 1명과 분대장 2~3명, 20여명의 노조원이 각자 임무를 부여받았다. 박씨는 6층에 약 200여명이 머물렀다고 전했다.
박씨와 같은 소대에서 있었다는 김모(44)씨는 "보는 눈이 많아 함부로 행동할 수도 없었다"며 "우발적으로 건물에 올라갔지만 내려오는 과정은 너무 힘들었다"고 밝혔다. 이들 역시 개구멍이라고 불리는 배관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노조가 점거중인 본사 건물에는 지난 18일부터 단전이 실시되고 음식물 반입이 중단되면서 단순 가담한 노조원들이 저항할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장마가 멈추면서 무더위가 시작됐고 배고픔도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노조는 에어컨 가동이 중단되자 일부 층의 건물유리창을 깼다. 노조의 '타도', '투쟁' 위주의 노조 플랜카드가 내걸린 건물은 흉측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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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정문 앞에는 이 때문인지 100여명의 노조원 가족들이 음식물을 반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던 가족들은 대부분 노조원들의 부인이었다. 이모(43)씨는 "가족에게 최소한 먹을 것이라도 전달할 수 있게 해줘야 할게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동안 식료품 공급을 허용해 왔지만 지난 18일 단전조치와 함께 식품전달을 금지하고 있다"며 "노조가 불법점거를 스스로 중단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다"고 설명했다.
포스코 본사 건물 1층에는 경찰지휘본부 관계자들과 전투경찰, 포스코 관계자들이 노조원들의 상황을 시시각각 파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당초 '금방 끝나겠지'했던 불법점거가 장기간 지속되자 상당히 민감해진 상태였다. 전투경찰들도 교대를 해가며 노조와 대치 중이었지만 사태가 장기화되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일부 지도급 노조원들은 강경일변도였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6일부터 18일 사이 농성장 진입로 철거작업을 벌이던 경찰에 화염을 방사하고 끓는 물을 부어댔다. 방심할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이날도 건물 옥상에서는 지도부로 보이는 노조원들이 깃발을 나부끼며 의지를 분명히 했다.

본사 건물 주변은 쓰레기장이 따로 없었다. 노조원들은 식사를 하고 남은 찌꺼기와 오물을 비닐에 담아 아래로 던져댔다. 먹다 남은 라면 찌꺼기들이 썩어 악취를 냈지만 아무도 치울 생각을 안했다. "노조원들이 쇠파이프로 건물 벽면 등을 내리쳐 만들 파편을 던지기도 한다"고 한 직원이 귀뜸했다. 그러고 보니 옥상에서 바라보이는 지상에는 돌멩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잘못하면 맞아죽을 수도 있는 돌세례를 무릅쓰고 쓰레기를 치울 이들은 당연히 없는 것 같았다.
한편 포스코는 단전조치에 이어 이날 오후 3시부터는 단수조치를 내렸다. 그러자 오후 4시경엔 노조가 언론에 결사항전 의지를 밝혔다. 유기수 민주노총 건설연맹 사무처장은 정문 출입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지경 건설노조 위원장 이름으로 쓰여진 선언문을 낭독했다.

노조측은 "청와대가 일용직 노동자들의 부득이한 항의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공권력을 투입한다면 이에 맞서 결사항전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유 사무처장은 이 외에도 대시민 호소문을 언론에 배포했다. 호소문은 노조의 농성이 포항시민에게 불편을 주고 있지만 자신들의 요구에도 귀를 기울여 달라는 요지로 작성됐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까지 건물에는 1000여명의 노조원들이 남아있다"며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자진해산을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원들의 저항이 매우 거칠어지고 있어 강제진압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