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여간 싱가포르국립대학에 머물면서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우리나라의 실정과 견주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싱가포르 역시 성장과 분배 문제에 대한 고민은 우리와 비슷하였다. 우리나라와 더불어 아시아의 4마리 용의 하나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싱가포르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의 경쟁력이 상실됨에 따라 기술집약적인 생명공학 등에 대한 투자와 중국 등을 대상으로 한 해외투자의 증가를 통해 성장동력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도착한 첫날 탄 택시기사에게 요즘 경기를 묻자 “너희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나라가 잘 산다고 개인이 잘 사냐?”라며 퉁명스럽고 냉소적인 대꾸를 들었다. 3D 업종이라 할 수 있는 단순 일용직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이주노동자들이 차지하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의 비중이 현저히 줄어든 현실은 결국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저소득층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싱가포르 체류 중에 저명한 경제학자인 존 로버츠가 쓴 현대기업론을 읽게 되었다. 기업과 조직에 관한 경제 이론을 정리한 이 책은 경제환경이 변화하였을 때 최적의 조직구성과 전략은 전과는 판이하게 변하게 되는데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부분적인 수정만을 하였을 경우에는 결국 그 조직은 경쟁에서 살아 남지 못한다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지난 40년간 눈부신 발전과 선진화를 이루었지만 모든 환경과 여건이 고도 경제 성장기와는 현격하게 변한 현실에서 경제성장 시기와 동일한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과연 계속 적절할지 강한 의문이 남았다.
무엇보다 싱가포르에서 부러운 것은 진정한 의미의 국제화이다. 이곳에 도착한 다음날 노동부와 출입국관리업무를 겸한 Departmement of Manpower로 고용허가증을 신청하러 갔다. 이미 싱가포르국립대학 측이 필요한 서류를 제출한 상태여서 여권과 대학 측의 편지를 제시하자 별다른 질문없이 3시간후 고용허가증을 받았다.
이 고용허가증만 있으면 싱가포르 내에서는 내국인과 거의 차별없이 생활할 수 있다. 필자 역시 은행계좌 개설, 핸드폰개통 등을 손쉽게 할 수 있었고, 잠시 말레이시아를 다녀올 때는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출입국 관리서류를 작성하지 않아도 되었다.
몇 년전 미국에 거주하시던 저명한 한국 경제학자 한 분이 노년에 한국 대학으로 돌아오시려 했을 때 단지 미국 국적자란 이유로 50년 지난 학부 성적표와 경제학회 회장의 증명서까지 제출할 것을 요구받았던 일과, 한국에 한달간 강의를 하러온 외국 교수가 한국 고용비자 받기가 미국영주권 받기보다 어려웠다는 말에 낯이 뜨거웠던 기억을 돌이켜 보면 너무나 대조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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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몸담고 있는 경영대학은 전문대학원 체제로 정비되면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외국 교수 초빙을 서두르고 있다. 이곳 대학들도 내·외국인을 구분하지 않고 능력있는 교수 초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를 위해 높은 급여뿐만 아니라 교육비, 주거비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수년간 국제화, 세계화를 강조하며 동북아 금융, 물류 허브를 지향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의 아시아 지역본부의 대부분이 싱가포르, 홍콩에 위치하고 있고, 이들 국가의 대학들이 외국교수 초빙에 성공적인 것은 근본적으로 외국인들이 생활하고 사업하고 연구하는데 별다른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건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고용비자의 발급절차에서부터 시작하여 교육, 의료 등 다양한 측면에서 외국인들이 불편없이 생활하고 사업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지 않는한 국제화는 요원하며, 국제화 없이 우리나라의 대외 경쟁력 강화는 성취되기 어려울 것이다.
싱가포르 교민사회와 학교들은 한국에서 이곳 학교로 공부하기 위해 연일 도착하는 학생들과 부모님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싱가포르는 비교적 싼 생활비와 안전한 치안, 한국과 가까운 지역적 특성 등으로 인해 일부 상류층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던 유학을 중산층에게까지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 정부와 학교들도 한국 유학생들과 가족들을 반기는 분위기이다. 수업료가 비싼 국제학교들은 더 많은 학생들을 받을 수 있어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고, 반면 수업료가 매우 낮은 내국인을 위한 학교들도 시험을 통과할 경우 외국인들 역시 입학할 수 있는데, 결국 여러 나라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학생들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이와 같은 해외 유학 현상을 단지 부모들의 극성으로 비난하는 것을 옳지 않다. 기러기 가족의 양산은 명백히 우리나라 교육 체제의 실패에서 기인한다. 필자 역시 교육문제에 민감한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많은 시간, 노력, 돈을 투입하면서 과연 우리나라 교육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연일 증가하는 유학생은 결국 우리나라 교육체제가 단순한 부분적인 수정만으로는 정상화될 수 없음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수십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환경과 여건 하에서 예전 체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한국 교육에는 큰 희망이 없는 것 같다. 연일 늘어나는 이곳 유학생들을 보면서 과연 어떤 식으로 우리나라 교육이 바뀌어야 할지 별다른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할 뿐이다.